🌍 3줄 요약
- 모리타니 사막 한가운데의 리샤트 구조는 지름 약 40km(외곽 고리까지 넓게 잡으면 45~50km)의 동심원이지만, 고리의 높낮이 차가 작아 정작 그 위에 선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 1960년대에는 운석 충돌 자국으로 소개됐다. 결정적 근거였던 코이사이트(강한 충격을 받은 석영)가 1969년 중정석 오인으로 밝혀지면서 충돌설은 학계에서 내려왔다.
- 2024년 연구는 이 구조가 한 번의 사건이 아니라 약 1억 년 간격을 둔 두 번의 화성활동이 겹친 결과라고 본다. 고리는 그 뒤 오랜 침식이 깎아 낸 단면이다.
지름 40km. 웬만한 대도시를 통째로 얹고도 자리가 남는 크기다. 그런데 이 거대한 동심원 무늬는, 정작 그 한복판에 서 있는 사람 눈에는 잡히지 않는다. 모리타니 북부 아드라르 고원의 리샤트 구조(Richat Structure), 이른바 '사하라의 눈' 이야기다. 지도가 아니라 궤도에서 먼저 주목받은 지형이자, 반세기 사이 학계가 그 정체에 대한 답을 한 번 뒤집은 지형이기도 하다.
지름 40km인데 왜 땅 위에서는 안 보일까
리샤트 구조가 지상에서 눈에 띄지 않는 이유는 고리가 너무 낮고 너무 넓기 때문이다. 능선과 골짜기의 높이 차이는 수십 m 수준인데 그것이 수십 km에 걸쳐 퍼져 있으니, 사람이 걸어 다니는 높이에서는 경사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사막을 가로지르는 평범한 바위 능선 몇 줄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원이라는 사실은 수백 km 위로 올라가 전체를 한 화면에 담아야 비로소 드러난다.
지름 수치가 자료마다 다른 것도 이 때문이다. 40km는 지층이 돔처럼 부풀어 오른 융기 구조 자체의 지름이고, 미국 항공우주국(NASA) 지구관측소가 쓰는 "약 50km(30마일)"는 위성 사진에서 눈에 띄는 바깥 고리까지 넉넉히 포함한 값이다. 어느 쪽이 틀린 게 아니라 무엇의 지름을 재느냐가 다르다. 그래서 이 글도 하나로 못 박지 않고 약 40km, 넓게 잡아 45~50km로 적는다.
우주비행사들의 사막 이정표가 된 사연
리샤트 구조가 널리 알려진 계기는 지질 조사가 아니라 유인 우주비행이었다. 1965년 제미니 4호 승무원들이 궤도에서 촬영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 이후 제미니·아폴로 승무원들의 사진에도 반복해 등장한다. NASA 지구관측소는 이 구조가 황량한 사하라에서 워낙 두드러져 우주왕복선 승무원들의 이정표(landmark)가 됐다고 설명한다. 특징 없는 모래 위에서 위치를 가늠할 표식이 필요했던 승무원에게, 지름 수십 km짜리 과녁만 한 무늬는 더없이 편한 기준점이었다.
공교롭게도 초기 승무원들에게는 "충돌 구조의 흔적일 만한 커다란 원형 지형을 눈여겨보라"는 요청이 함께 있었다. 궤도에서 내려다본 첫인상이 곧 '거대한 크레이터'였던 셈이고, 그 첫인상은 이후 수십 년 동안 대중적 설명으로 굳었다.
운석 충돌설을 무너뜨린 것은 '나오지 않은 증거'였다
충돌설이 폐기된 근거는 새로 나온 무언가가 아니라, 있어야 할 것이 끝내 나오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운석이 대규모로 부딪히면 중앙 봉우리, 충격으로 녹았다 굳은 암석, 강한 압력을 받은 석영 같은 흔적이 남는다. 리샤트에서는 그중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정타는 광물 하나였다. 1960년대에 이곳에서 코이사이트가 검출됐다는 보고가 나오면서 충돌설은 강력한 물증을 얻은 듯했다. 코이사이트는 아주 강한 충격을 받은 석영이 변한 광물이라 충돌 구조의 지문으로 통한다. 그런데 로버트 푸달리(R. F. Fudali)가 1969년 Science에 발표한 후속 분석은 그 검출이 오인이었다고 정정했다. 해당 논문에 따르면 코이사이트의 것으로 읽혔던 X선 반사는, 지하수를 타고 부서진 암석 틈으로 스며든 중정석(바라이트, 황산바륨 광물)의 신호였다. 같은 해 디츠와 푸달리는 리샤트와 이웃한 셈시야트 돔을 두고 "애스트로블렘(운석 충돌 흔적)이 아니다"라는 제목의 보고를 내놓는다. 물증 하나가 다른 광물로 판명되자, 지구에서 가장 유명한 '크레이터'는 크레이터 명단에서 조용히 빠졌다.
그렇다면 이 동심원은 무엇이 만들었나
현재의 정설은 지하에서 밀어 올리고 지표에서 깎아 낸 합작품이다. 마그마가 지하에서 지층을 돔처럼 부풀리자 위에 얹혀 있던 퇴적층이 둥글게 휘었고, 이후 바람과 물이 그 돔의 윗부분을 통째로 깎아 냈다. 단단한 규암층은 능선으로 버티고 무른 층은 골짜기로 파여, 양파를 가로로 자른 듯한 고리가 남았다. NASA가 이 지형을 크레이터가 아니라 "침식으로 드러난 대칭적 융기"라고 기술하는 이유다.
구체적인 시간표는 최근에야 손질됐다. 압데이나(Abdeina) 연구팀이 2024년 Lithos에 발표한 연대 측정 연구는 리샤트의 화성암이 한 시기의 산물이 아니라고 본다. 고리처럼 배열된 반려암(가브로)은 약 2억 3천만~2억 년 전, 대서양이 열리기 시작할 무렵의 대규모 화성활동(CAMP)에서 지층 사이로 스며든 판상 관입체이고, 정작 돔을 밀어 올린 알칼리질 관입은 그로부터 약 1억 년 뒤인 백악기에 일어났다는 것이다. 그 백악기 관입의 흔적인 카보나타이트(탄산염 성분이 주인 화성암)는 다른 연구에서 9,900만±500만 년, 8,500만±500만 년으로 측정됐다.
중심부에 깔린 거대한 각력암(부서진 암석 조각이 굳은 돌)도 충돌의 파편이 아니었다. 마통과 제브락은 2005년 Geology에서, 뜨거운 열수가 지하 암석을 녹여 만든 빈 공간의 천장이 무너지며 생긴 것으로 해석했다. 폭발이 아니라 용해와 붕괴, 즉 지하에서 조용히 진행된 카르스트 작용에 가깝다는 설명이다.
아틀란티스설은 어디에서 어긋나나
동심원이라는 형태 하나를 빼면 겹치는 것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아틀란티스설은 지질학적 근거가 약하다. 플라톤이 묘사한 도시가 원형 수로와 육지가 번갈아 놓인 구조였기에 1960년대부터 이곳을 그 후보로 지목하는 주장이 이어졌지만, 리샤트의 고리는 사람이 판 수로가 아니라 오래된 퇴적층이 침식으로 드러난 단면이다. 인공 구조물이나 도시의 흔적이 확인된 적도 없다.
다만 이 지역이 늘 사막이었던 것은 아니다. 사하라가 훨씬 습했던 시기의 흔적과 선사시대 석기가 주변에서 보고돼 왔고, 그래서 "사람이 살았던 적 있는 땅"이라는 사실 자체는 과장이 아니다. 문제는 거기서 곧장 잃어버린 도시로 건너뛰는 논리다. 국제지질과학연맹(IUGS)이 이곳을 '백악기 알칼리 복합체'라는 이름의 지질유산으로 등재한 것도, 이 지형의 가치를 신비가 아니라 화성활동과 침식의 교과서적 단면에서 찾고 있다는 뜻이다.
| 위치 | 모리타니 북부 아드라르 고원, 와단 인근 |
|---|---|
| 지름 | 융기 구조 기준 약 40km / 바깥 고리 포함 45~50km |
| 형성 | 2억 3천만~2억 년 전 반려암 관입 → 약 1억 년 뒤 백악기 알칼리 관입으로 돔 융기 → 침식으로 고리 노출 |
| 한때의 오해 | 운석 충돌 크레이터(1969년 코이사이트 오인 정정 후 폐기) |
사하라의 눈이 흥미로운 이유는 신비가 남아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이 무엇을 근거로 지형을 판정해 왔는지가 이 원 하나에 압축돼 있어서다. 궤도에서 본 모양이 근거였던 시절이 있었고, 광물 한 알의 X선 신호가 그것을 뒤집었으며, 2024년에는 연대 측정이 '한 번의 사건'이라는 마지막 전제까지 둘로 갈라놓았다. 이 글은 2026년 8월 기준으로 NASA 지구관측소와 IUGS 지질유산 자료, 2024년 Lithos 논문을 포함한 6개 자료를 대조해 정리했고, 지름처럼 값이 갈리는 항목은 일부러 하나로 좁히지 않았다. 남은 질문도 있다. 강한 열수 변질이 지역 전체를 덮어 놓은 탓에 일부 암석의 정확한 관계와 기원은 아직 정리되지 않았다.
자주 묻는 질문
Q. 사하라의 눈은 직접 가서 볼 수 있나요?
A. 갈 수는 있습니다. 보통 모리타니 아타르에서 친게티를 거쳐 와단까지 이동한 뒤, 현지 가이드와 사륜구동 차량으로 접근합니다. 다만 앞서 설명했듯 지상에서는 원 모양이 보이지 않아, 실제로 보게 되는 것은 사막의 낮은 능선과 붉은 암반입니다. 더위가 심한 여름을 피해 11~3월을 권하는 안내가 많고, 출발 전 외교부 여행경보 단계를 확인하는 것이 좋습니다.
Q. 위성지도로도 확인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지도 서비스에서 'Richat Structure'로 검색하거나 대략 북위 21.1도, 서경 11.4도 부근을 찾아 축척을 20~50km 수준으로 넓히면 동심원 전체가 한 화면에 들어옵니다. 너무 확대하면 오히려 평범한 사막 능선으로 보여서, 이 지형만큼은 '덜 확대해야' 정체가 드러납니다.
Q. 사진 속 푸르스름한 고리는 물이나 호수인가요?
A. 물이 아닙니다. 고리의 색 차이는 층마다 다른 암석 성분과 표면 상태에서 옵니다. 단단한 규암 능선과 그 그림자, 주변 모래의 산화철 색이 대비되면서 위성 사진에서 청회색과 황갈색 띠로 갈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이 일대에 상시 호수는 없습니다.
Q. 근처에 비슷한 구조가 또 있나요?
A. 있습니다. 인근의 셈시야트 돔이 같은 계열로 꼽히며, 1969년 충돌설을 반박한 보고도 리샤트와 셈시야트를 함께 다뤘습니다. 크기와 선명함에서 리샤트가 압도적이라 대중적으로는 리샤트만 알려졌습니다.
Q. 정정된 지 오래인데 왜 아직도 운석 충돌로 소개되나요?
A. 1960년대의 첫 설명이 사진과 함께 대중매체에 워낙 널리 퍼진 뒤, 정정 논문은 학술지 안에서만 돌았기 때문입니다. 시각적으로도 '크레이터'라는 설명이 직관적이라 반박 없이 인용되기 쉬웠습니다. 지금은 NASA와 IUGS 등 공식 자료 모두 융기·침식 기원으로 기술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