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로 말하면 — 1985년 11월 10일 제방이 무너지며 바닷물보다 일곱 배 이상 짠 물속으로 사라졌던 아르헨티나의 온천 마을은, 25년 뒤 물이 빠지자 소금에 절여진 폐허로 다시 드러났다.
물에 잠긴 마을이 25년 만에 다시 떠오르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남아 있을까?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의 빌라 에페쿠엔은 그 질문에 실물로 답한 드문 사례다. 한때 여름마다 수천 명이 찾던 온천 휴양지였고, 1985년 11월의 어느 밤 이후 25년 가까이 지도에서 사라졌다가, 2000년대 말부터 소금에 절여진 폐허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빌라 에페쿠엔은 왜 1985년 11월에 물에 잠겼을까
1970년대부터 이어진 습윤 주기가 라구나 에페쿠엔의 수위를 계속 밀어 올렸고, 그 물을 막으려고 1978년에 쌓은 방어 제방이 1985년 11월 10일 무너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대학과 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회의 알레한드라 헤랄디는 2023년 논문에서 평년치 700밀리미터를 웃도는 강수가 이어지는 가운데 유역 다른 곳에서 흘러든 물이 겹쳤다고 정리했다(PASOS 21권 1호, 2023).
물은 단번에 마을을 덮치지 않았다. 같은 논문에 따르면 1986년 겨울 빌라 라고 에페쿠엔의 거리에는 4미터의 물이 차 있었고, 1993년에는 8~10미터 아래로 완전히 잠겼다. 주민 대피는 사망자 없이 끝났지만 마을은 그대로 수몰됐다.
수위가 오르기만 한 데는 지형의 몫이 크다. 에페쿠엔은 알시나·코치코·델 몬테를 비롯한 서부 연쇄호 일곱 개 가운데 가장 낮은 자리에 있고, 이 수계 전체에는 바다로 이어지는 배출구가 없다. 들어온 물이 나갈 길은 증발뿐이라, 한 번 불어난 수위는 여러 해에 걸쳐 천천히만 내려간다.
📏 잠기는 데 8년 1986년 겨울 거리에 4미터, 1993년에는 8~10미터. 제방이 무너진 밤부터 완전 수몰까지 8년이 걸렸고, 그 사이 주민들은 물이 한 해에 한 층씩 올라오는 과정을 지켜봐야 했다.
아메기노 운하가 없었다면 물은 얼마나 찼을까
훨씬 얕게, 훨씬 짧게 끝났을 것이라는 계산이 있다. 아르헨티나 국립수자원연구소 전산수리학 프로그램과 국립기술대학 아베야네다 지역학부 연구진은 살라도강 유역 17만 제곱킬로미터를 통합 수문 모형으로 재현한 뒤, "아메기노 운하가 닫혀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질문을 모형에 직접 물었다(Mecánica Computacional 27권, 2008, 351~368쪽).
아메기노 운하는 1970년대 말 살라도강의 물을 연쇄호 수계로 돌리려고 만든 인공 수로다. 연구진이 운하가 없던 조건을 넣고 돌리자, 두 시나리오의 결과는 1985년 12월부터 뚜렷하게 갈렸다. 그 시점 이후 에페쿠엔 쪽으로 밀려든 초과 유량이 운하에서 왔다는 뜻이다.
결론은 간명했다. 운하가 닫혀 있었다면 침수는 더 작았을 뿐 아니라 지속 기간도 훨씬 짧았으리라는 것이다. 에페쿠엔의 수몰을 그해의 폭우 하나로 설명하기는 어렵다는 뜻이며, 이 사건이 수리 시설 관리의 문제로도 읽히는 근거이기도 하다.
염도 251~372그램이 빌라 에페쿠엔에 남긴 것
라구나 에페쿠엔의 평균 염도는 리터당 251~372그램으로, 32~35그램인 바닷물의 일곱 배에서 열한 배에 이른다. 헤랄디의 현장 측정과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수리국 자료를 합친 2004~2018년 값이며, 같은 논문은 이 정도 염도를 사해에나 견줄 수 있다고 적었다.
이 소금이 마을의 처음과 끝을 모두 만들었다. 20세기 초 사람들은 치료 효과를 기대하고 호숫가로 몰려들었고, 1921년 1월 23일 해수욕장 '마르 데 에페쿠엔'이 문을 열면서 그 곁에 마을이 생겼다. 이듬해 2월 호숫가 부지가 처음 경매에 부쳐지며 휴양 도시의 골격이 잡혔다.
전성기의 규모는 인구보다 숙박 시설이 잘 보여준다. 라 나시온은 2010년 기사에서 침수 전 마을에 상주 인구 1,500명이 살았고 호텔 객실이 5,000개 침상 규모였다고 전했다. 사람 한 명당 침대 세 개가 넘게 준비돼 있던, 여름 손님을 위해 지어진 도시였던 셈이다.
물이 빠진 뒤 드러난 풍경이 유난히 하얗고 앙상한 것도 그 때문이다. 벽돌과 나무가 오래 잠겨 있는 동안 염분이 스며들었고, 물이 물러난 자리에서는 증발이 남은 소금을 표면에 결정으로 남겼다. 호숫가에 소금 더미가 쌓이던 곳이라는 기록이 그 조건을 보여준다.
| 위치 |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주 아돌포 알시나 군, 수도에서 약 500km·바이아블랑카에서 약 230km |
|---|---|
| 수계 | 서부 연쇄호 7개 호수의 최저점, 배출구 없는 내륙 폐쇄 유역(해발 약 100m 축선) |
| 염도(2004~2018) | 251~372g/L — 이웃 호수는 알시나 1.8~2.3, 코치코 5.3~6.1, 델 몬테 17.1, 바닷물 32~35 |
| 침수 깊이 | 1986년 겨울 거리에 4m → 1993년 8~10m |
| 마을의 시작 | 1921년 1월 23일 해수욕장 '마르 데 에페쿠엔' 개설, 1922년 2월 5일 호숫가 첫 부지 경매 |
🔁 마르면 짓고, 젖으면 잃는다 헤랄디는 이 유역에서 건조기에 호숫가로 관광지·제염 시설·마을이 들어섰다가 습윤기에 위태로워지고 더러는 완전히 사라져 왔다고 적었다. 에페쿠엔은 그 주기의 가장 큰 사례다.
지금 빌라 에페쿠엔에는 누가 살고 있을까
상주하는 사람은 없다. 물이 물러난 폐허로 돌아와 홀로 지내던 파블로 노박이 2024년 1월 아흔셋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뒤, 마을에 사는 사람은 남지 않았다(인포바에, 2024년 1월).
노박은 1985년 대피 때 이웃들과 함께 떠나지 않고 인근 자기 땅에 남았고, 물이 빠진 뒤에는 폐허 안에서 지내며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마을을 안내했다. 인포바에는 그가 폐허로 들어가 산 기간을 약 13년으로 전했다.
물이 언제 완전히 물러났는지는 자료마다 표기가 조금씩 다르다. 라 나시온은 2010년 기사에서 "최근 5년 사이 물이 몇 미터 내려갔다"고만 적었고, 폐허가 드러난 시점을 하루 단위로 못 박은 1차 자료는 이번에 찾지 못했다. 배출구 없는 호수에서 증발만으로 수위가 내려간 과정이라 경계를 정하기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주민이 떠난 자리는 방문객이 채우고 있다. 헤랄디의 논문에 따르면 폐허는 시·주 차원의 역사문화유산으로 지정됐고, 옛 기차역 건물에는 침수의 역사와 호수의 염분 특성을 설명하는 해설관이 들어섰다. 육로와 수로를 따라가는 안내 투어가 운영되고, 다큐멘터리와 광고·영화 촬영지로도 쓰인다.
「소금에 절인 마을」을 두고 남는 질문들
Q. 폐허를 직접 방문할 수 있나요?
A. 가능합니다. 폐허는 시·주 역사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지역 가이드와 함께 둘러볼 수 있고, 육로와 수로를 각각 이용하는 안내 투어가 운영됩니다. 옛 기차역에 마련된 해설관에서 침수 당시의 기록을 먼저 보고 들어가는 방식이 일반적입니다.
Q. 호수 물에 들어가도 되나요?
A. 폐허 구역은 관람용이고, 물놀이와 온천·이수 시설은 이웃한 카르우에 쪽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염도가 워낙 높아 몸이 쉽게 뜨는 대신 눈과 상처에는 자극이 강하므로, 운영 중인 시설의 안내를 따르는 편이 안전합니다.
Q. 폐허의 나무들이 하얗게 말라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A. 소금 때문입니다. 20년 넘게 고염도 물에 잠겨 있는 동안 목질과 벽체에 염분이 배어들었고, 물이 빠진 뒤에는 표면에서 물만 증발해 소금이 결정으로 남았습니다. 그 결과 나무는 껍질을 잃고 뼈처럼 흰빛을 띠게 됐습니다.
Q. 마을을 원래 자리에 다시 세울 수는 없나요?
A. 같은 위험이 반복되는 자리입니다. 헤랄디는 이 유역에서 건조기에 호숫가로 들어선 시설과 마을이 습윤기마다 위태로워졌고 일부는 완전히 사라졌다고 정리했습니다. 배출구가 없는 폐쇄 유역이라 수위가 다시 오를 여지도 남아 있습니다.
빌라 에페쿠엔이 남긴 눈금
빌라 에페쿠엔의 폐허는 재난의 흔적이면서 동시에 눈금이다. 벽에 남은 흰 띠의 높이가 그해 물이 어디까지 찼는지를 알려주고, 그 아래 무너진 형태가 소금물에 담긴 시간의 길이를 알려준다. 기록으로만 남았을 수치가 건물의 몸에 새겨진 셈이다.
확인 작업을 한 시점은 2026년 9월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남부대학·아르헨티나 국립과학기술연구회의 2023년 논문과 국립수자원연구소·국립기술대학 연구진의 2008년 수문 모형 논문을 나란히 놓고 날짜와 수치를 맞춰 봤는데, 폐허가 정확히 몇 년 몇 월에 수면 위로 드러났는지는 자료마다 표기가 달라 본문에서 하나의 날짜로 못 박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