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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은 1889년 대화재 뒤 도시를 한 층 들어올렸다

글 · 버려진 장소 · · 약 13분 · 조회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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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애틀 발밑에 옛 도시가 통째로 남아 있다는 말이 사실일까?

사실이다. 1889년 6월 6일 대화재로 도심 25블록이 잿더미가 된 뒤, 시애틀은 무른 땅과 하수 역류를 한꺼번에 해결하려고 도로 높이를 통째로 올렸다. 그 결과 옛 1층 상점과 인도가 새 도로 아래에 갇혔고, 파이어니어스퀘어 일대에서는 지금도 그 공간을 걸어서 지날 수 있다.

2026년 9월에 시애틀시 역사보존 담당 부서가 운영하는 파이어니어스퀘어 보존지구 안내와 언더그라운드 투어 운영사의 연혁 페이지를 나란히 열어 값을 맞춰 봤다. 불에 탄 블록 수처럼 자료마다 숫자가 갈리는 항목은 어느 쪽 표기를 따랐는지 본문에 밝혀 두었다.

파이어니어스퀘어를 걷다 보면 인도 바닥에 박힌 손바닥만 한 유리 조각들이 눈에 들어온다. 색이 곱게 바랜 보라색이라 장식처럼 보이는데, 왜 도심 한복판 보도에 유리가 격자로 깔려 있을까?

답은 그 유리가 창문이었다는 데 있다. 지금 사람들이 밟고 지나는 보도는 원래 도로가 아니었고, 바로 아래에 상점과 인도가 있던 진짜 1층이 있었다. 유리는 그 아래 공간에 햇빛을 넣어 주던 채광창이었다.

시애틀 언더그라운드에는 지금 무엇이 남아 있나

남아 있는 것은 터널이 아니라 도로가 덮인 옛 보도와 상점 앞면이다. 벽돌로 쌓은 아치 입구, 손님을 맞던 진열창 자리, 계단 몇 단이 그대로 있고, 천장 쪽에는 위 보도에 박힌 유리 격자가 흐릿한 빛을 떨군다. 한 구역의 옛 지면과 그 위로 새로 올라간 지면 사이에 생긴 틈, 그것이 지금의 언더그라운드다.

운영사 안내에 따르면 방문객이 보는 것은 "화재 뒤 도시가 스스로의 위에 다시 지어지면서 묻힌 지하 상점가와 보도"다. 좁은 통로가 건물과 건물 사이로 이어지고, 중간중간 위쪽 도로를 떠받치는 옹벽이 드러난다. 상수도관과 전선이 나중에 이 틈을 따라 지나가면서, 옛 상점가는 도시의 배관 통로 노릇도 하게 됐다.

규모를 가늠하려면 위아래를 함께 봐야 한다. 지상에서 보면 그저 오래된 벽돌 상가 거리지만, 같은 건물의 지하로 내려가면 창틀과 문지방이 사람 키 높이에 걸려 있다. 지금 1층으로 쓰는 층이 원래는 2층이었다는 사실이 그 한 장면에 다 담긴다.

AI로 재현한 시애틀 언더그라운드의 벽돌 통로와 천장에 박힌 보라색 유리 채광창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1889년 화재 뒤 시애틀은 왜 도로를 한 층 올렸나

도로를 올린 이유는 물이었다. 시애틀시 역사보존 안내는 "1889년 6월 6일 화재가 도심 상업 중심부의 목조 건물 25블록을 태웠다"고 적고, 시의회가 벽돌과 석재 같은 내화 재료를 의무화하는 조례를 통과시켰다고 밝힌다. 이어 "도시 상당 부분이 질척한 습지 위에 지어져 있었기 때문에 그 일대를 메우고 도로 높이를 올렸으며, 그 결과 오늘날 시애틀 언더그라운드로 불리는 공간이 생겼다"고 설명한다. 자세한 내용은 시애틀시 파이어니어스퀘어 보존지구 안내에 실려 있다.

물 문제는 단순한 침수가 아니었다. 이 일대는 조수가 드나드는 갯벌을 메워 만든 땅이라, 밀물 때가 되면 엘리엇만으로 빠져야 할 하수가 거꾸로 밀려 올라왔다. 지대를 통째로 올려 배수 경사를 확보하는 것이 도시가 고른 해법이었다.

공사 방식은 투박했다. 투어 운영사 연혁에 따르면 시는 옛 도로 양쪽에 8피트가 넘는 옹벽을 세우고 그 사이를 흙으로 채운 뒤 위를 포장했다. 그렇게 생긴 빈 공간은 "일부 구간에서 35피트 높이"에 이르렀다고 적혀 있다. 상인들은 새로 생긴 위층으로 가게를 옮겼고, 한동안은 위아래 두 층에서 장사가 동시에 이뤄졌다.

두 층이 함께 쓰이던 시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상인들이 새 지면으로 가게를 옮긴 뒤에도 보행자들은 옛 인도를 계속 이용했고, 그때 아래 통로를 밝힌 것이 보도에 박힌 프리즘 유리였다. 위층 도로와 아래층 인도가 같은 거리에서 동시에 굴러가던 셈이다.

불에 탄 범위는 자료마다 다르게 적힌다. 시애틀시 안내는 25블록, 여러 백과 항목은 29블록으로 쓰고, 지역 역사 자료는 면적 기준으로 약 64에이커라고 적는다. 세는 단위가 블록이냐 면적이냐, 완전히 소실된 구역만 세느냐 피해 구역까지 넣느냐에 따라 갈리는 값이라 이 글은 시 공식 안내의 25블록을 기준으로 적었다.

1889년 6월 6일대화재로 도심 상업지구 25블록 소실(시애틀시 표기)
화재 직후시의회가 벽돌·석재 등 내화 재료 사용 조례 통과
1890년대옹벽을 세워 흙을 채우고 도로를 한 층 올림, 옛 보도가 지하에 남음
1965년 5월빌 스파이델이 첫 공개 지하 투어 진행
1970년파이어니어스퀘어가 시애틀 최초의 보존지구이자 국가 역사지구로 지정

파이어니어스퀘어 보도의 유리는 어쩌다 보라색이 됐나

보라색은 유리에 섞어 넣은 망간이 햇빛을 수십 년 받아 나타난 색이다. 처음 깔릴 때 이 프리즘 유리는 투명했고, 새 보도 아래 갇힌 옛 인도에 자연광을 넣으려고 촘촘히 박혔다. 두꺼운 유리 블록을 쇠 틀에 끼워 보도에 박는 방식이라, 위로는 사람이 밟고 아래로는 빛이 퍼지도록 설계됐다.

색이 변한 원리는 유리 제조에 쓰인 첨가물에 있다. 코닝 유리박물관 안내에 따르면 19세기 유리장이들은 모래에 섞인 철분 탓에 생기는 초록빛을 지우려고 이산화망간을 넣었고, 이 첨가물은 "유리장이의 비누"로 불렸다. 햇빛의 자외선을 오래 쬐면 망간과 철 이온 사이에서 전자가 오가는 광화학 반응이 일어나고, 그 결과 유리가 연분홍에서 짙은 자수정 빛까지 물든다.

평평한 유리가 아니라 프리즘을 쓴 데에도 이유가 있다. 아래쪽 면을 쐐기 모양으로 깎으면 위에서 수직으로 들어온 빛이 옆으로 꺾여 통로 안쪽까지 퍼진다. 채광창 바로 밑만 밝고 나머지는 어두운 문제를 유리 모양 하나로 푼 19세기 말의 해법이었다.

미국 여러 도시의 19세기 말 건물 창과 병에서도 똑같은 보라색이 나타난다. 다만 파이어니어스퀘어처럼 보도 전체에 프리즘이 깔려 지하 공간과 짝을 이루는 사례는 흔치 않고, 그래서 이 유리는 도시의 지층을 알려주는 표지 노릇을 한다.

유리는 지금도 관리 대상이다. 미국 국가역사보존신탁은 파이어니어스퀘어 얼라이언스와 함께 2017년 5월부터 프리즘 보존을 위한 모금을 진행해 4만 달러가 넘는 금액을 모았고, 손봐야 할 패널이 여전히 남아 있다고 밝힌다. 관련 기록은 국가역사보존신탁의 프리즘 보존 기록에서 볼 수 있다.

파이어니어스퀘어 지하가 지금 서 있는 자리

지하가 관광지가 된 것은 한 사람의 집요함 덕이다. 지역 저널리스트 빌 스파이델은 파이어니어스퀘어의 옛 건물들이 헐릴 위기에 놓이자 사람들을 직접 지하로 데려갔다. 운영사 연혁은 1965년 5월 "시애틀 알기의 날"에 첫 공개 투어가 열렸고 그날 500명이 한 사람당 1달러를 내고 따라 내려갔다고 적는다. 그 기록은 투어 운영사가 정리한 연혁 페이지에 남아 있다.

관심이 모이면서 보존 논의도 힘을 얻었고, 파이어니어스퀘어는 1970년 시애틀 최초의 보존지구가 됐다. 지구 경계는 1973년과 1987년에 넓어져 지금은 약 88에이커에 이른다.

보존지구 지정은 건물의 겉모습만 지킨 것이 아니었다. 벽돌 상가가 헐리지 않고 남았기 때문에 그 밑에 딸린 옛 보도와 상점 앞면도 함께 버텼다. 지상의 규제가 지하의 유물을 지킨 흔치 않은 사례다.

다만 지하가 언제, 왜 공식적으로 닫혔는지는 아직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1907년에 시가 전염병 확산을 우려해 지하 보도를 폐쇄했다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는데, 질병 이름이 자료마다 다르고 그 결정을 담은 시 기록을 이번에는 확인하지 못했다. 확실한 것은 그 뒤로 상점가가 방치됐고, 반세기 가까이 지나 다시 사람들의 발길이 닿았다는 사실이다.

"직접 내려가 볼 수 있나요" — 방문 전에 자주 나오는 물음을 모았다

Q. 시애틀 언더그라운드는 누구나 들어갈 수 있나요?

A. 개인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공간이 아니라 가이드 투어로만 공개됩니다. 운영사 공식 안내는 75분짜리 도보 투어로 소개하며, 집결 장소는 파이어니어스퀘어의 1번가 614번지입니다. 연중 매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매시 정각에 출발하고, 6월부터 9월까지는 30분 단위 출발이 더해집니다.

Q. 돈을 내지 않고 볼 수 있는 부분도 있나요?

A. 보도에 박힌 보라색 프리즘 유리는 거리에서 그냥 볼 수 있습니다. 파이어니어스퀘어 일대를 걸으며 발밑을 살피면 유리 격자가 남은 구간을 여러 곳에서 만날 수 있고, 그 격자가 곧 아래에 옛 인도가 있다는 표시입니다.

Q. 걷기 편한 편인가요?

A. 편한 편은 아닙니다. 지상과 지하를 여러 번 오르내리는 구조라 계단이 반복되고, 바닥이 고르지 않으며 조명도 밝지 않습니다. 굽 없는 신발을 권하며, 이동에 도움이 필요하다면 예약 전에 운영사에 직접 확인하는 편이 안전합니다.

Q. 지하 공간 전체가 개방돼 있나요?

A. 아닙니다. 옛 보도와 지하 공간은 파이어니어스퀘어 여러 블록에 흩어져 있지만, 대부분은 개별 건물 소유주의 사유 공간이거나 안전상 폐쇄돼 있습니다. 투어가 지나는 구간은 그중 정비와 조명이 갖춰진 일부입니다.

Q. 보라색 유리를 기념품으로 살 수 있나요?

A. 보도에 박힌 프리즘은 보존 대상이라 떼어 낼 수 없습니다. 다만 같은 원리로 색이 변한 19세기 말 병과 창유리가 골동품 시장에서 "자수정 유리"라는 이름으로 거래되므로, 색만 놓고 보면 비슷한 물건을 구하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Q. 아이와 함께 가도 괜찮을까요?

A. 계단과 어두운 통로가 이어지므로 유아차는 다니기 어렵습니다. 해설에 도시 위생과 초기 정착기의 험한 이야기가 섞여 나오는 만큼, 어린아이와 간다면 연령 안내와 그날 해설 구성을 미리 확인해 두는 편이 좋습니다.

시애틀 언더그라운드파이어니어스퀘어프리즘 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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