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숲은 통째로 쓰러졌는데 왜 구덩이가 없을까?
A. 천체가 땅에 닿기 전 상공에서 부서지며 에너지를 쏟아 냈기 때문이다. 지면에 도달한 것은 충격파뿐이어서 나무는 넘어갔어도 파인 자리는 생기지 않았다.
1908년 6월 30일 아침 시베리아에서 830제곱마일(약 2,150㎢)의 숲이 방사형으로 누웠고, 그 중심에서 충돌 구덩이는 끝내 확인되지 않았다.
쓰러진 나무 수와 피해 범위는 2026년 9월에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역사 페이지와 영국 왕립그리니치천문대 해설을 나란히 놓고 확인했다. 두 곳이 적는 나무 수가 '수백만 그루'와 '8,000만 그루'로 갈리는데 세는 방법을 밝힌 곳이 없어, 어느 쪽도 확정하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1908년 6월 30일 이른 아침, 시베리아 예니세이강 지류의 교역소 바나바라에서 한 상인이 현관 앞에 앉아 있었다. 훗날 조사팀이 채록한 증언에 따르면 그는 북쪽 하늘이 불로 갈라지는 것을 봤고, 뜨거운 바람이 셔츠를 태울 듯 밀려온 다음 몸이 몇 미터 밖으로 날아갔다.
수백 킬로미터 밖에서도 창이 깨졌다. 유럽의 기압계들은 그날 이상한 파형을 받아 적었고, 며칠 동안 북반구의 밤하늘이 신문을 읽을 수 있을 만큼 밝았다는 기록이 남았다. 그러나 조사자가 폭발이 일어난 자리에 발을 들이기까지는 그로부터 19년이 더 걸렸다.
1908년 6월 30일 아침, 퉁구스카 상공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졌나?
지름 수십 미터급의 천체가 대기로 들어와 지표에 닿기 전 부서졌고, 그 충격파가 시베리아 침엽수림을 방사형으로 눕혔다. 미국 항공우주국(NASA)의 정리는 현지 시각 오전 7시 15분경으로 시각을 적고, 항공·지상 조사가 확정한 피해 범위를 830제곱마일, 폭심에서 9~22마일에 걸친 나비 모양으로 기술한다.
나무들이 넘어진 방향이 조사의 핵심 단서였다. 폭심을 가운데 두고 사방으로 뻗은 방사형 배열은 힘이 한 점에서 밖으로 퍼졌다는 뜻이고, 이 배열을 지도에 옮기면 화살표들이 모이는 지점이 곧 폭발이 일어난 하늘 아래가 된다.
정작 그 중심에서는 나무들이 서 있었다. 가지와 껍질이 벗겨진 채 기둥만 남아 전신주처럼 늘어선 숲이었는데, 힘이 바로 위에서 수직으로 내리눌렀기 때문에 옆으로 넘어뜨릴 방향이 없었던 것이다.
쓰러진 나무의 수는 자료마다 폭이 크다. NASA는 '수백만 그루'로 적고, 영국 왕립그리니치천문대의 해설은 8,000만 그루라는 값을 제시한다. 넓이는 실측으로 좁혀졌지만 그루 수는 밀도를 곱해 얻는 추산이라 자료 사이의 간격이 그대로 남아 있다.
퉁구스카에는 왜 운석 구덩이가 남지 않았을까?
대기와 부딪히며 받은 압력이 천체를 공중에서 부숴 버렸기 때문이다. 초속 수십 킬로미터로 들어온 물체 앞면에는 어마어마한 압력이 걸리고, 이를 견디지 못한 몸체가 갑자기 부서지면 운동에너지가 짧은 시간에 열과 충격파로 바뀐다. 이것이 공중폭발(에어버스트)이다.
땅에 닿은 것은 이 충격파와 열복사였다. 고체 덩어리가 지면을 때린 것이 아니어서 굴착의 흔적, 곧 크레이터가 생길 조건 자체가 없었다.
| 발생 시각 | 1908년 6월 30일 현지 시각 오전 7시 15분경 |
|---|---|
| 위치 | 시베리아 포드카멘나야 퉁구스카강 북쪽 침엽수림(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 |
| 쓰러진 범위 | 830제곱마일(약 2,150㎢), 폭심에서 9~22마일(약 14~35㎞)의 나비 모양 |
| 천체 지름 추정 | 약 40m(130피트)로 보는 견해와 50~100m로 보는 견해가 함께 쓰인다(둘 다 NASA 자료 표기) |
| 폭발 고도 추정 | 지표 위 약 6~10㎞ |
| 충돌 구덩이 | 확인된 크레이터 없음 |
위력의 크기도 비교로만 전해진다. 영국 왕립그리니치천문대의 해설은 이 폭발을 히로시마 원폭 185발에 견주고, 다른 자료들은 수 메가톤에서 수십 메가톤 사이의 값을 제시한다. 계산의 출발점이 모두 쓰러진 숲의 넓이와 나무의 상태라서, 어떤 모형을 쓰느냐에 따라 결과가 갈린다.
표의 지름과 고도가 폭넓은 이유는 관측 장비가 남긴 값이 없기 때문이다. 1908년의 시베리아 상공을 겨눈 카메라도 레이더도 없었으므로, 천체의 크기와 터진 높이는 지상에 남은 피해를 거꾸로 풀어서 얻은 계산값이다. NASA 자료 안에서도 페이지에 따라 130피트와 50~100m가 함께 쓰이는 것은 그래서다.
퉁구스카 조사는 100년 넘게 어디까지 왔을까?
공중폭발이라는 뼈대는 굳었고, 지금 남은 논쟁은 그 천체가 무엇이었고 어디로 갔는가에 모인다. 조사의 출발선은 1921년, 소련 과학아카데미가 지질학자 레오니트 쿨리크를 현장으로 보낸 때다.
첫 시도는 실패했다. 길도 마을도 없는 지역이라 쿨리크는 폭심 근처에 닿지 못했고, 그가 목적지에 도달한 것은 1927년이었다. 거대한 운석 구덩이와 철덩어리를 기대하고 갔던 그는 방사형으로 누운 숲만 확인했다.
조사가 19년이나 늦어진 데에는 러시아 쪽 사정이 있었다. 사건 직후 러시아는 전쟁과 혁명, 내전을 잇달아 겪었고 폭심은 철도에서 한참 떨어진 늪지대였다. 쿨리크가 이 사건에 매달리게 된 계기도 옛 지역 신문에 실린 목격 기사를 뒤늦게 접한 것이었다고 전해진다.
피해 범위가 지금의 형태로 확정된 것은 훨씬 뒤다. 1950~60년대에 항공사진과 지상 측량, 자원한 연구자들의 답사가 겹쳐지며 나비 날개를 닮은 830제곱마일의 윤곽이 그려졌다.
천체의 정체를 두고는 여전히 새 논문이 나온다. 2020년 학술지 먼슬리 노티시스 오브 더 로열 애스트로노미컬 소사이어티에 실린 시베리아연방대 다닐 흐렌니코프 연구팀의 논문(doi:10.1093/mnras/staa329)은 철질 소행성이 최저 고도 10~15㎞로 대기를 스치고 지나 다시 우주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을 계산으로 제시했다. 파편이 남지 않은 이유를 설명하려는 시도다.
현지 전승을 검증한 조사도 있다. 폭심에서 남서쪽으로 20㎞ 떨어진 수즈달레보 호수를 두고 원주민 에벤키인들 사이에서는 1908년 직후 생긴 충돌 구덩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져 왔는데, 2022년 프런티어스 인 어스 사이언스에 실린 조사는 호수 바닥에서 1908년보다 오래된 퇴적층을 확인했다. 최대 수심 약 2.3m에 넓이 약 1.8ha인 이 호수는 깊이와 지름의 비가 충돌 구덩이의 일반적인 범위에 들어맞지도 않았다.
연구팀은 결론을 좁게 잡았다. 호수가 충돌로 생겼다고 보기 어렵다는 데까지만 말하고, 퇴적층에서 읽히는 생태 교란의 흔적을 사건과 곧바로 잇는 것은 연대측정의 오차 때문에 유보했다.
퉁구스카가 오래 신화로 소비된 것은 남은 물증이 지나치게 적기 때문이다. 화구 목격담과 기압 기록, 그리고 쓰러진 나무의 방향 — 조사자들이 손에 쥔 것은 사실상 이 세 가지였고, 100년 넘는 시간 동안 이 재료만으로 사건을 되짚어 왔다.
그래서 이 사건은 아직 완결된 이야기가 아니다. 폭발의 성격은 정리됐지만 천체의 종류와 행방은 논문이 갈리는 자리로 남아 있고, 시베리아의 늪지대는 여전히 다음 조사팀을 기다리고 있다.
퉁구스카 사건의 남은 물음들
Q. 퉁구스카 폭발 현장은 지금 가 볼 수 있나?
A. 러시아 크라스노야르스크 지방의 자연보호구로 지정돼 있어 자유로운 방문지는 아니다. 가장 가까운 마을에서도 도로가 이어지지 않아 헬기나 도보·수로로만 접근하는 오지이며, 방문에는 보호구 당국의 허가가 필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Q. 이 폭발로 사람이 죽었나?
A. 인구가 극히 희박한 지역이라 공식 사망자 집계는 남지 않았다. 다만 폭발 에너지가 순록 떼를 죽일 정도였다는 서술과, 원주민 야영지가 날아가고 사람이 멀리 튕겨 나갔다는 증언이 조사 기록에 함께 남아 있다.
Q. 지금도 비슷한 일이 일어날 수 있나?
A. 실제로 일어난다. 2013년 러시아 첼랴빈스크 상공에서 지름 20m 안팎의 천체가 같은 방식으로 공중폭발해 충격파로 유리창이 대량으로 깨지고 1,000명 넘는 부상자가 나왔다. 이 사건 이후 지구 근접 천체 감시망을 넓히는 작업이 각국에서 강화됐다.
Q. '퉁구스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
A. 폭심 남쪽을 흐르는 강 이름에서 왔다. 예니세이강의 지류인 포드카멘나야 퉁구스카강이 조사 보고서에서 위치를 가리키는 기준으로 쓰이면서 사건 이름으로 굳었다.
Q. 혜성설과 소행성설 가운데 정설은 무엇인가?
A. 하나로 정해지지 않았다. 얼음과 먼지로 이뤄진 혜성 조각이라면 흔적이 남지 않는 이유가 자연히 설명되고, 소행성이라면 폭발 규모를 맞추기가 쉬워 양쪽이 각자의 강점을 두고 겨루는 상태다.
Q. 폭심에서 운석 조각은 정말 하나도 안 나왔나?
A. 후속 조사에서 지구 밖 물질로 보이는 미세 입자가 채집되기는 했다. 다만 양이 매우 적고 주변 토양·이탄층에도 우주 먼지가 섞여 들어오기 때문에, 그 입자를 1908년의 그 천체와 결정적으로 잇는 데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