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바닥보다 조금 큰 나무판 위에 사람과 새, 물고기와 도구를 닮은 작은 기호들이 촘촘히 줄지어 새겨져 있다. 한 줄을 끝까지 따라가 다음 줄로 눈을 옮기면 기호들이 거꾸로 뒤집혀 있다. 판을 180도 돌려야 다음 줄이 바로 선다. 남태평양 이스터섬(라파누이)에서 나온 이 목판의 문자를 롱고롱고라고 부른다.
Q. 롱고롱고는 지금 어디까지 밝혀졌나?
2024년 방사성탄소 측정에서 로마에 보관된 목판 한 점의 나무가 1493~1509년에 베인 것으로 나왔다.
새기는 방법과 읽는 방향은 확인됐고, 문장의 의미는 여전히 미해독으로 남아 있다.
롱고롱고 목판은 언제 만들어졌을까
로마에 보관된 목판 네 점 가운데 한 점의 나무가 1493~1509년(이하 1500년 무렵으로 줄여 적는다)에 베인 것으로 측정됐다. 실비아 페라라(Silvia Ferrara)가 이끄는 볼로냐대학교 연구진은 2024년 2월 2일 《사이언티픽 리포츠》에 로마의 예수 마리아 성심 수도회가 소장한 목판 네 점의 방사성탄소 연대 측정 결과를 발표했다.
네 점 중 세 점의 연대는 유럽인이 섬을 오간 시기와 겹친다. 타후아(Tahua)로 불리는 목판은 1862~1887년, 아루쿠 쿠렝가(Aruku Kurenga)는 1832~1857년, 마마리(Mamari)는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중반 사이 구간으로 나왔다. 유독 에샹크레(Échancrée)만 한참 앞선 값을 내놓았고, 연구진은 나무를 벤 시점까지 50±5년을 더해 보정한 뒤 1500년 무렵이라는 값을 얻었다.
측정 확률 구간을 넓히면 범위도 함께 넓어진다. 논문이 제시한 68.3퍼센트 구간은 1493~1509년이고, 95.4퍼센트 구간은 1483~1520년이다. 어느 쪽을 택하든 유럽 배가 이 섬에 닿은 1720년대보다 200년 이상 앞선 나무다.
마마리의 값이 하나로 좁혀지지 않은 점도 논문에 그대로 적혀 있다. 이 목판의 연대는 1694~1727년 구간이 32.4퍼센트, 1744~1770년 구간이 18.2퍼센트로 나뉘어 제시됐다. 공저자에는 하이델베르크대학교 환경물리연구소의 베른트 크로머, 취리히연방공과대학교 이온빔물리연구소의 루카스 바커, 볼로냐대학교의 사흐라 탈라모가 이름을 올렸다.
섬의 사정도 논문에 한 줄로 정리돼 있다. 유럽 항해자들이 1720년대에 라파누이에 닿았을 때 섬의 토양은 이미 상당 부분 침식되고 고갈된 상태였다는 것이다. 목판을 만들던 시기와 섬의 환경이 크게 달라진 시기가 어디서 겹치는지는 이번 연대 측정이 새로 열어 놓은 질문이다.
2026년 9월에 확인한 1차 자료는 《사이언티픽 리포츠》 2024년 논문과 《오세아니아학회지(Journal de la Société des Océanistes)》 2009년 논문 두 편이다. 두 편 모두 전문이 공개돼 있다. 다만 연대가 직접 측정된 목판은 이번 네 점을 포함해 여섯 점뿐이라, 나머지 유물의 제작 시기는 이 글에서 확정하지 않았다.
롱고롱고 기호는 어떻게 새기고 어느 방향으로 읽을까
흑요석 조각으로 얕게 그은 뒤 상어 이빨로 홈을 깊게 파는 두 단계 방식으로 새겼고, 줄이 끝날 때마다 판을 뒤집어 읽는다. 폴 호를리(Paul Horley)는 2009년 《오세아니아학회지》 129호에 조각 기법과 서기의 수정 흔적을 분석한 논문을 실으며 이 과정을 정리했다.
줄마다 방향이 뒤집히는 이 배열을 역 부스트로페돈(reverse boustrophedon, 소가 밭을 갈듯 좌우로 왕복하되 줄마다 상하가 뒤집히는 표기)이라고 부른다. 읽는 사람은 목판을 손에 쥐고 한 줄이 끝날 때마다 통째로 돌려야 한다. 새기는 사람도 같은 동작을 반복해야 했다는 뜻이다.
호를리가 세 점의 목판에서 살펴본 기호는 약 4,000개에 이른다. 그 많은 기호 가운데 잘못 새긴 흔적은 드물었고, 남아 있는 수정은 기호 모양을 조금 다듬거나 빠뜨린 기호를 끼워 넣거나 새긴 면을 갈아내고 다시 새기는 방식이었다. 얕게 미리 그어 둔 선이 그대로 남아 작업 순서가 드러나는 대목도 있다.
도구를 두 종류 쓴 흔적은 작업 순서를 그대로 드러낸다. 얕게 그어 둔 예비선이 최종 획과 완전히 겹치지 않은 자리에서는 어느 선이 먼저 그어졌는지가 눈에 보인다. 호를리는 이런 자리들을 근거로 조각 공정을 두 단계로 재구성했다.
🪶 글씨가 뒤로 갈수록 좋아진다 호를리는 같은 배열이 여러 번 반복되는 대목에서 뒤에 나오는 기호일수록 형태가 나아지는 현상을 짚었다. 초안을 옮겨 적었다면 나타나기 어려운 특징으로, 목판 위에서 곧바로 문장을 지어 나갔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짧은 구간을 하나씩 마무리한 뒤 다음 구간으로 넘어간 흔적도 함께 관찰됐다.
롱고롱고는 왜 아직 해독되지 않았을까
목판 제작이 1860년대 후반에 끊기면서 읽는 법을 아는 사람이 함께 사라졌다. 페라라 연구진은 논문에서 롱고롱고가 지금도 해독되지 않은 상태라고 못 박으면서, 이 문자가 남아 있는 나무 유물이 27점이며 그 가운데 섬에 남아 있는 것은 한 점도 없다고 적었다. 로마의 네 점 역시 1869년 유럽 선교사들이 모아 타히티 주교 테파노 조상(Tepano Jaussen)에게 보낸 것이 19세기 말 유럽으로 건너간 결과다.
정확히 몇 점이 남았는지는 세는 기준에 달려 있다. 2024년 논문 본문은 27점으로 세고 초록에서는 "30점 미만"이라고 적었으며, 2009년 호를리의 논문은 두 다스가량, 곧 스물네 점 안팎으로 표기했다. 진위가 의심되는 유물을 넣느냐 빼느냐에 따라 스무 점대 중반과 후반 사이에서 값이 갈린다.
기호 자체는 문자의 특징을 갖추고 있다. 페라라 연구진의 정리에 따르면 기호들은 사람의 자세와 신체 부위, 동물과 식물, 도구, 천체 같은 여러 부류의 형상을 본떴고, 복잡한 합자로 결합돼 길고 선형적인 배열을 이루며 수정 흔적까지 남겼다. 이런 특징은 이 기호들이 실제 언어를 적은 표기라는 근거로 제시된다.
목판이 섬을 떠난 경위도 자료의 조건을 만든다. 네 점은 1869년에 한꺼번에 수집돼 타히티로 건너갔고 19세기 말 다시 유럽으로 옮겨졌는데, 제작이 끊긴 시점과 수집 시점의 간격이 몇 해에 지나지 않는다. 문자를 쓰던 사회가 급격히 축소되던 시기와 유물이 흩어진 시기가 사실상 붙어 있는 셈이다.
연구를 이끈 쪽의 관심사도 여기에 닿아 있다. 페라라 연구진의 작업은 유럽연구위원회(ERC)가 호라이즌 2020 프로그램으로 지원하는 'INSCRIBE — 문자의 발명과 그 시작' 과제의 일부로 수행됐다. 문자가 어떤 조건에서 처음 생겨나는지를 사례별로 따지는 과제이고, 롱고롱고는 그 과제가 다루는 사례 가운데 하나다.
에샹크레의 연대가 갖는 무게도 여기에 있다. 연구진은 이 목판의 이례적인 연대가 외부의 개입 없이 섬 주민이 문자 체계를 만들어 냈을 가능성을 가리킨다면, 롱고롱고는 인류사에서 문자가 독자적으로 발명된 몇 안 되는 사례가 될 수 있다고 적었다.
"판을 돌려야 다음 줄이 보인다" — 롱고롱고를 둘러싼 물음
Q. 이스터섬에 가면 롱고롱고 목판을 볼 수 있나요?
A. 2024년 논문은 남아 있는 목판 가운데 섬에 있는 것은 한 점도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글에서 다룬 네 점은 로마의 예수 마리아 성심 수도회가 소장하고 있고, 나머지도 유럽과 아메리카의 박물관·수도회 등에 흩어져 있습니다. 관람 가능 여부는 소장 기관마다 다릅니다.
Q. 나무의 연대가 1500년 무렵이면 글자도 그때 새겨진 건가요?
A. 방사성탄소 연대는 나무가 자라기를 멈춘 시점을 알려 주며, 기호를 새긴 시점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2024년 논문도 에샹크레의 나무를 두고 표류목 가설을 비중 있게 다뤘습니다. 오래된 나무에 나중에 새겼을 가능성이 남아 있다는 뜻입니다.
Q. 목판은 무슨 나무로 만들어졌나요?
A. 네 점에서 세 가지 수종이 확인됐습니다. 2024년 논문은 아루쿠 쿠렝가와 마마리를 태평양 지역의 테스페시아 포풀네아로, 타후아를 유럽 물푸레나무로, 에샹크레를 포도카르푸스속 나무로 동정했습니다. 섬에 자생하지 않는 수종이 섞여 있다는 점이 표류목 논의가 나오는 배경입니다.
Q. 섬 사람들이 글을 쓰는 모습을 본 기록이 있나요?
A. 2024년 논문은 1770년에 섬 주민들이 깃펜을 들고 무언가를 쓰며 연습하는 모습이 관찰된 의식 기록을 언급합니다. 그 기록이 가리키는 것이 롱고롱고인지 유럽식 필기를 흉내 낸 것인지는 아직 판정되지 않은 상태로 남아 있습니다.
Q. 롱고롱고와 모아이 석상은 관련이 있나요?
A. 2024년 논문은 롱고롱고 기호의 형태가 섬에 남은 암각화 모티프와 가장 가깝다고 설명합니다. 석상 제작 전통과의 직접적인 연결은 이 논문이 다루는 범위가 아니어서, 두 문화 요소를 하나의 서사로 묶는 서술은 이 글에서 하지 않았습니다.
Q. 해독에 성공했다는 주장은 왜 계속 나오나요?
A. 롱고롱고 연구는 대조할 이중 언어 자료가 없고 표본도 스무 점대에 그칩니다. 부분적인 해석 제안은 계속 제기되지만, 2024년 논문은 이 문자를 여전히 미해독으로 기술합니다. 학계의 합의로 인정된 판독은 아직 없다고 보는 편이 자료에 맞습니다.
롱고롱고 연구가 지금 서 있는 자리
롱고롱고 연구에서 확정된 것은 목판 한 점의 나무 연대이고, 그 값이 논쟁의 한쪽 끝을 크게 앞으로 밀어 놓았다. 목판 하나의 나무가 1500년 무렵의 것이라면, 롱고롱고를 유럽인과의 접촉 이후에 생긴 모방물로만 설명하기는 어려워진다. 그 나무가 섬에 자생하지 않는 수종이라는 사실은 표류목이라는 또 다른 이야기를 함께 끌어들인다.
남은 과제는 분명하다. 목판 스무 점 남짓의 연대를 더 채우고, 기호 배열의 규칙을 더 정밀하게 기술하는 작업이 이어져야 한다. 판을 돌려 가며 기호를 새긴 사람들이 무엇을 적어 두었는지는 다음 세대의 과제로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