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숨은 이야기

550만 년 봉인이 풀린 날, 루마니아 모빌레 동굴 발견기

글 · 자연현상 · · 약 11분 · 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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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빛도, 지상의 먹이도 없는 동굴에서 무엇이 생태계를 돌리는가?

A. 루마니아 모빌레 동굴은 약 550만 년 봉인된 채, 황화수소와 메탄을 산화하는 미생물이 먹이사슬의 바닥을 떠받쳐 왔다.

확인된 무척추동물은 51종, 그중 35종은 지구 어디에도 없는 이 동굴만의 고유종이다.

수치와 종 수는 2026년 9월, 신종 기재 논문(ZooKeys, 2020)과 미생물학 리뷰(Microorganisms, 2023)의 표기에 맞춰 적었다. 고립이 시작된 시점만은 연구그룹 소개문과 논문 사이에 편차가 있어, 본문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발밑 18미터에 550만 년 동안 닫혀 있던 방이 있다면, 그 안에서는 지금 무엇이 살고 있을까? 루마니아 흑해 연안 도시 망갈리아 근처의 평범한 들판 아래에 그 답이 실재한다. 산소는 희박하고 황화수소가 차오르는 공기 속에서, 눈이 사라진 생물들이 빛 한 줄기 없이 완결된 먹이사슬을 이루고 사는데, 그 주인공들 대부분은 이 동굴 밖 어디에도 없다.

1986년 망갈리아의 시추공이 뚫은 세계 — 모빌레 동굴 발견기

모빌레 동굴은 1986년 발전소 부지를 고르기 위한 지질 조사 도중 우연히 발견됐다. EU 지질조사 연합 프로그램 GeoERA의 소개에 따르면 시추 작업이 지하의 빈 공간을 건드렸고, 루마니아의 지질학자이자 동굴학자인 크리스티안 라스쿠가 처음으로 내려가 이 밀폐된 세계를 확인했다.

동굴 자체는 크지 않다. 학술 리뷰(Microorganisms, 2023)의 기재로는 지하 18m에 마른 위층 통로 약 200m가 이어지고, 그 아래로 황화수소가 녹아든 지하수가 차 있다. 입구는 밀폐된 수직 갱도 하나뿐이라, 발견 이후에도 소수의 연구자만 이 안에 발을 들였다.

발견자 라스쿠는 지질학자이자 동굴학자, 사진가이기도 했다. 동굴 전체 길이를 240m로 적는 소개(GeoERA)도 있으나 리뷰 논문은 마른 위층 통로를 약 200m로 기재하는데, 물에 잠긴 아래 구간까지 세느냐의 차이로 읽힌다. 규모만 보면 평범한 소형 동굴이, 이후 세계에서 손꼽히게 고유종이 밀집한 서식지로 판명된 셈이다.

AI로 재현한 모빌레 동굴 내부의 어두운 석회암 통로와 유황빛 지하 호수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빛 없는 모빌레 동굴에서 먹이사슬은 어떻게 도는가

지상의 생태계가 태양에 기대는 자리에서, 모빌레 동굴은 화학반응에 기댄다. 물과 벽면을 덮은 미생물 막이 지하수의 황화수소와 공기 중 메탄을 산화해 유기물을 만들고, 그 위에 톡토기·노래기·거미·물전갈·거머리로 이어지는 먹이사슬이 얹힌다. 이런 방식을 화학합성이라 부른다.

이 구조를 학계에 처음 보고한 것은 세르반 사르부 연구진의 1996년 Science 논문(doi:10.1126/science.272.5270.1953)이다. 지표에서 내려오는 유기물 없이 화학합성만으로 유지되는 육상 생태계가 확인된 첫 사례로 평가됐고, 지하수에는 황화수소가 최대 1mM(밀리몰) 농도로 녹아 있다는 측정도 이어졌다.

미생물 막은 지하 호수의 수면에 얇은 껍질처럼 떠 있고, 벽과 퇴적물 위에도 깔린다. 이 막을 원생생물과 윤형동물·선충이 뜯어 먹고, 그 위에 등각류·톡토기 같은 절지동물이, 꼭대기에는 물전갈·거머리·플라나리아 같은 포식자가 얹힌다. 출발점이 태양 대신 황화수소일 뿐, 층위가 갖춰진 온전한 먹이 피라미드다.

산소 7~16%의 공기 — 모빌레 동굴과 지표 대기의 대조

모빌레 동굴의 공기는 사람이 오래 머물기 어려운 조성이다. 신종 기재 논문(ZooKeys, 2020)의 표기로 산소는 7~16%에 그치고, 이산화탄소는 1.5~3.5%, 메탄은 1~2%에 이르며 황화수소와 암모니아가 섞여 있다.

산소 수치의 폭이 큰 것은 측정 지점이 다르기 때문이다. 리뷰 논문의 실측으로는 지하 호수가 있는 '호수의 방'은 19%까지 유지되지만, 안쪽의 밀폐된 공기 종(air bell) 공간은 7~10%까지 떨어진다. 아래 표의 동굴 값은 문헌이 보고한 범위다.

성분 모빌레 동굴 공기 지표 대기
산소7~16% (지점에 따라 다름)약 21%
이산화탄소1.5~3.5%약 0.04%
메탄1~2%미량
황화수소·암모니아검출됨(지하수 황화수소 최대 1mM)사실상 없음

이산화탄소 농도가 지표 공기의 100배 수준이라는 것이 GeoERA의 설명이다. 황화수소를 품은 따뜻한 지하수가 기체를 계속 뿜어 올리고, 밀폐된 공간이 이를 가둬 두기 때문이다. 사람에게는 장비 없이 오래 머물기 어려운 조성이지만, 이 동굴의 생물들에게는 550만 년 유지된 안정된 기후이기도 하다.

모빌레 동굴은 왜 외계 생명 연구의 모델이 됐을까

생명 유지에 햇빛이 필수가 아님을 실물로 보여 주기 때문이다. 에너지원이 화학반응뿐인 생태계가 수백만 년 자립해 왔다면, 화성의 지하나 목성 위성 유로파의 얼음 밑 바다처럼 태양이 닿지 않는 환경도 같은 방식의 생명을 품을 수 있다는 가설에 무게가 실린다.

생물 목록은 지금도 자라는 중이다. 2020년에는 몸길이 약 52mm로 동굴 최상위 포식자인 지네가 새로 기재돼 '동굴의 왕'이라는 뜻의 학명 크립톱스 스펠레오렉스(Cryptops speleorex)를 받았고, 2023년에도 새 갑각류가 Scientific Reports에 보고됐다. 자료 시점에 따라 48종·고유종 33종으로 적는 소개도 있으나, 신종 기재 논문 기준으로는 51종이며 고유종은 지네를 더해 35종이 됐다.

새 지네는 몸집이 크고 더듬이와 다리가 길어지는 전형적인 동굴 적응 형질을 보였고, 형태와 유전 정보를 지상의 가까운 종들과 대조한 끝에 별종으로 기재됐다. 2022년에는 퇴적물 메타게놈 분석(Environmental Microbiome)이 미생물 군집의 경쟁·협력 구조까지 들여다보는 등, 발견 40년이 가까워 오도록 논문이 계속 나오는 현역 연구지다. 조사되지 않은 구석이 남아 있어, 종 수가 앞으로 더 늘어날 가능성도 열려 있다.

출입은 엄격히 제한된다. 연구그룹 GESS Lab의 소개로는 동굴은 기밀문이 달린 18m 수직 갱도로만 이어지며, 미생물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 한 해 몇 차례의 진입만 허용된다.

통제의 이유는 연구 편의가 아니라 보존이다. 바깥 공기와 미생물이 흘러들면 550만 년 이어진 균형이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들어가는 연구자도 인원과 체류를 최소로 묶는다. 그렇게 아껴 쓴 진입 기회마다 표본과 데이터가 쌓이면서, 이 작은 동굴은 지구에서 손꼽히게 꼼꼼히 기록된 밀폐 생태계가 됐다.

550만 년의 봉인은 시추공 하나로 끝났지만, 그 덕에 지구는 생명의 최소 조건을 다시 묻는 실험실 하나를 얻었다. 빛이 사라진 자리에서도 생태계가 완결될 수 있다는 사실만큼은, 이 작은 동굴이 이미 증명해 둔 셈이다. 문이 다시 조용히 잠긴 지금도, 그 안의 먹이사슬은 발견 전과 똑같이 돌아가고 있을 것이다.

「빛이 없어도 생태계는 돈다」 — 모빌레 동굴에 남는 질문들

Q. 일반인도 모빌레 동굴에 들어가 볼 수 있나요?

A. 관광 개방은 되어 있지 않다. 미생물 생태계의 오염을 막기 위해 연구 목적의 제한된 진입만 허용되며, 입구도 잠긴 수직 갱도 하나뿐이다.

Q. 동굴 위 지상에는 무엇이 있나요?

A. 루마니아 남동부 망갈리아 인근의 버려진 채굴 구덩이 지대다. 겉보기에는 표지도 없는 들판에 가까워, 발밑에 밀폐 생태계가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Q. 모빌레 동굴 생물들은 눈이 있나요?

A. 다수가 눈이 퇴화했거나 없고 색소도 옅다. 물전갈 네파 아노프탈마(Nepa anophthalma)는 학명 자체가 '눈이 없다'는 뜻이며, 더듬이와 다리가 길어지는 동굴 적응형 특징이 흔하다.

Q. 밀폐된 동굴의 물과 에너지는 어디서 오나요?

A. 지하 깊은 대수층에서 올라오는, 황화수소가 녹은 열광천수가 물과 에너지원을 동시에 공급한다. 지표에서 스며드는 물과 유기물은 점토와 석회암 층이 차단해 온 것으로 설명된다.

Q. 550만 년 봉인됐다는 것은 어떻게 아는 걸까요?

A. 동굴을 덮은 지층이 밀봉된 시기 추정과, 바깥 친척과 갈라진 고유종들의 분화 정도가 근거로 쓰인다. 다만 고립 시점을 더 최근으로 적는 자료도 있어, 정확한 연대는 계속 다듬어지는 중이다.

Q. 이런 화학합성 생태계가 지구에 또 있나요?

A. 황화수소에 기대는 생태계 자체는 심해 열수분출공 주변 등에서도 발견된다. 다만 육상에서 수백만 년 단위로 봉인된 채 자립해 온 사례로는 모빌레 동굴이 가장 잘 연구된 표본으로 꼽힌다.

모빌레 동굴화학합성 생태계루마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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