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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도 신경도 없는 점균이 도쿄 철도망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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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재현한 배양 접시 위 노란 점균이 귀리 조각 사이로 뻗은 관 모양 망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점균이 도쿄 노선도를 설계했다는 이야기는 과학 뉴스의 단골 소재다. 흔히 "뇌 없는 생물이 인간 기술자를 이겼다"는 한 줄로 요약되지만, 2010년 실험에서 점균이 마주한 것은 노선도가 아니라 젖은 배지 위에 놓인 귀리 조각 몇 십 개였다.

실험이 남긴 흥미로운 지점은 다른 데 있다. 중앙 관제탑도 설계도도 없는 단세포 생명체가, 사람이 수십 년에 걸쳐 늘리고 줄인 철도망과 비슷한 수준의 해답에 도달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과정은 신비가 아니라 관 하나하나가 굵어지고 사라지는 아주 단순한 규칙으로 설명된다.

점균이 정말 도쿄 철도망을 그린 걸까?

아니다. 점균은 먹이를 잇는 관 망을 스스로 다듬었을 뿐이고, 그 결과가 도쿄 철도망과 비슷했다는 것이 실험의 내용이다. 관련 논문은 2010년 1월 22일 Science 327권 439~442쪽에 실렸고, 일본과 영국 연구자 아홉 명이 이름을 올렸다.

점균 실험이 배지 위에 올린 것은 귀리 조각이었다

연구진이 배지 위에 놓은 것은 도쿄권 도시들의 위치를 본뜬 먹이 배치였다. 논문은 "도쿄 지역 도시들의 지리적 위치를 나타내는 먹이원 36곳으로 이루어진 배치에 점균이 연결되는 것을 관찰했다"고 적는다. 점균은 도쿄에 해당하는 자리에 놓였고, 나머지 먹이는 주변 도시 자리에 흩어졌다.

실험에 쓰인 피사룸 폴리케팔룸(황색망사점균)은 처음에 배지의 빈 공간을 두껍게 뒤덮는다. 그다음이 핵심이다. 먹이에 닿지 않은 부분을 스스로 걷어내며 망을 솎아 나가고, 남은 관들이 굵은 줄기와 가는 가지로 갈린다. 사람이 노선을 지우고 다시 그리는 대신, 세포가 자기 몸을 줄여 가며 답을 좁히는 셈이다.

조건을 맞추는 일도 실험의 일부였다. 논문은 점균의 성장이 물리적 장벽과 빛 조건에 따라 제약될 수 있다고 적는다. 도쿄 주변은 바다와 산이 막고 있어 철도가 아무 데나 놓이지 못하는데, 그 제약을 배지 위에서도 흉내 낼 수 있어야 사람이 만든 망과 점균이 만든 망을 나란히 놓고 견줄 수 있다.

배치의 크기 감각도 짚어 둘 만하다. 접시 한 장에 도쿄권이 통째로 축소되면 역과 역 사이는 손톱만 한 간격이 된다. 점균은 그 좁은 간격을 관 굵기의 차이로 구분해야 하고, 사람의 눈에는 거의 붙어 보이는 두 먹이를 따로 이을지 하나로 묶을지까지 스스로 정한다.

2026년 9월에 규슈대학교가 공개한 논문 서지 페이지와 arXiv에 올라온 후속 수학 논문 초록을 각각 열어 값을 맞춰 봤고, 배양 시간처럼 원논문 본문에서 직접 확인하지 못한 수치는 이 글에 옮기지 않았다.

뇌도 신경도 없는 점균이 어떻게 길을 고르나

점균이 쓰는 규칙은 흐름이 많은 관은 굵어지고 흐름이 적은 관은 가늘어져 사라진다는 되먹임 하나다. 관 안에서는 원형질(세포 내부를 채운 액체)이 앞뒤로 오간다. 먹이와 먹이를 짧게 잇는 관일수록 액체가 많이 지나고, 그 관은 더 굵어져 더 많은 흐름을 받는다.

반대로 우회하는 관은 흐름이 줄고, 줄어든 흐름 때문에 더 가늘어지다가 끊긴다. 판단하는 주체가 따로 없는데도 망 전체가 정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점균은 아메바에 가까운 원생생물이고, 핵을 여럿 가진 하나의 거대한 세포다. 신경을 둘 몸의 구획 자체가 없는 대신, 세포 전체가 하나의 유압 회로처럼 연결돼 흐름의 변화를 몸 끝까지 전달한다.

사람의 망 설계와 견주면 차이가 뚜렷해진다. 철도 계획은 수요 예측과 예산과 정치가 얽힌 결정이고, 한번 놓인 선로는 쉽게 걷어내지 못한다. 점균에게는 그 매몰 비용이 없다. 쓸모가 줄어든 관은 그냥 흡수되고, 그 자원은 다른 관을 굵히는 데 다시 쓰인다.

두 번의 이그노벨상  나카가키 도시유키를 비롯한 연구자들은 2008년 이그노벨 인지과학상(점균의 미로 풀이)에 이어 2010년 이그노벨 교통계획상을 받았다. 옥스퍼드대학교가 2010년 공개한 수상 소식은 이 팀에 일본과 영국 연구자가 함께 이름을 올렸다고 전한다.

사이언스 논문은 총 길이와 내결함성으로 두 망을 견줬다

비교의 잣대는 세 가지 값이었다. 논문은 먹이원 사이를 잇는 총 길이(TL), 먹이원 쌍 사이의 평균 최소 거리(MD), 그리고 관이 끊겼을 때 망이 버티는 정도인 내결함성(FT)을 함께 놓고 따졌다.

세 값은 서로 당긴다. 길이를 줄이면 우회로가 사라져 한 곳이 끊겼을 때 망이 갈라지고, 끊김에 대비해 우회로를 늘리면 건설 비용에 해당하는 총 길이가 불어난다. 논문 초록은 점균이 만든 망이 "효율, 내결함성, 비용에서 실제 인프라 망에 견줄 만한" 수준이었다고 정리한다. 원문과 서지 정보는 규슈대학교 연구업적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고, 논문 식별자는 10.1126/science.1177894이다.

이그노벨상을 받은 연구가 왜 수학 논문으로 이어졌나

이그노벨상 수상 이후 이 연구는 수학 쪽으로 넘어갔다. 점균의 규칙이 그대로 수식으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수상 이력의 출발점은 2000년으로 거슬러 간다. 나카가키 도시유키와 야마다 히로야스, 토스 아고타는 그해 Nature 407권 470쪽에 한 쪽짜리 보고를 실어, 미로에 놓인 점균이 처음에는 가능한 모든 통로를 채웠다가 부피를 줄여 최단 경로에만 남는다는 것을 보였다.

이그노벨상은 웃게 만든 뒤 생각하게 하는 연구에 주어진다. 도쿄 실험은 그 정의에 잘 맞는 사례였고, 웃음 뒤에 남은 생각을 붙잡은 쪽은 수학자들이었다. 빈첸초 보니파치, 쿠르트 멜호른, 기리시 바르마는 2012년 Journal of Theoretical Biology 309권 121~133쪽에 실은 논문에서, 생물학자들이 세운 이 되먹임 모델을 따르면 점균의 질량이 결국 두 먹이 사이의 최단 경로로 수렴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증명이 붙는 순간 이야기의 성격이 바뀐다. 신기한 관찰이 아니라, 망의 구조나 처음의 질량 분포와 무관하게 성립하는 계산 절차가 되기 때문이다. 진화가 다듬어 온 절차가 사람이 쓰는 최적화 알고리즘과 같은 목적지를 향하고 있었던 셈이다.

포르투갈 철도망과 겨룬 2023년 모델

점균 모델은 지금도 새 망을 상대로 시험대에 오른다. 호드리구 알메이다와 후이 딜랑은 2023년 5월 arXiv에 공개한 논문에서, 관을 탄성 있는 통로로 보고 그 안의 유체 흐름을 다루는 모델로 점균의 관 망 형성을 재현했다.

알메이다와 딜랑이 고른 비교 대상은 도쿄가 아니라 포르투갈의 실제 철도망이었고, 모델이 만든 망은 흐름이 변동하는 조건에서 더 나은 성능을 보였다고 저자들은 적는다. 먹이원을 번갈아 활성화하면 먹이끼리 직접 이어지는 패턴이 나타난다는 관찰도 함께 실렸다. 도쿄 실험이 하나의 사례로 굳지 않고 여전히 열려 있는 문제로 다뤄지고 있다는 뜻이다.

비교 대상이 바뀌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도쿄권은 세계에서도 손꼽히게 조밀한 철도망이라 어떤 모델이든 좋은 점수를 받기 쉬운 무대다. 인구 밀도와 지형이 다른 나라의 망을 상대로 같은 규칙을 돌려 봐야, 점균의 방식이 특정 도시에만 맞는 우연인지 아닌지가 드러난다.

"이건 어떻게 되나요" — 점균을 두고 자주 이어지는 물음에 답한다

Q. 점균은 어디에 속하는 생물인가요?

A. 점균은 아메바처럼 기어 다니는 원생생물 무리에 속합니다. 균사를 뻗어 자라는 곰팡이와는 계통이 멀고, 실험에 쓰인 황색망사점균의 몸은 핵을 여럿 가진 하나의 커다란 세포입니다. 습한 낙엽층이나 썩은 나무 표면에서 노란 그물 모양으로 발견됩니다.

Q. 도쿄 철도망이 세계에서 가장 효율적이라는 뜻인가요?

A. 그런 뜻은 아닙니다. 실험은 도쿄 주변 도시 배치라는 같은 조건에서 점균의 망과 실제 철도망을 세 가지 지표로 비교했을 뿐이며, 다른 나라 철도망과 순위를 매긴 연구가 아닙니다. 점균이 다른 해답을 낸 구간도 있었습니다.

Q. 집에서 점균을 키울 수 있나요?

A. 황색망사점균은 생물 수업용 배양 키트로 유통될 만큼 다루기 쉬운 편입니다. 한천 배지와 귀리 조각, 어두운 상자만 있으면 하루 이틀 사이에 망이 뻗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습도와 곰팡이 오염 관리가 성패를 가릅니다.

Q. 실제 노선이나 도로를 점균으로 설계한 사례가 있나요?

A. 개통된 노선을 점균이 정한 사례는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까지는 점균의 규칙을 옮긴 알고리즘이 최단 경로 문제나 망 설계 문제를 푸는 연구 단계에 있으며, 기존 망을 평가하거나 대안을 그려 보는 도구로 쓰입니다.

Q. 점균은 얼마나 커질 수 있나요?

A. 먹이와 습도가 충분하면 배양 접시를 넘어 수십 센티미터 넓이까지 퍼집니다. 커지는 동안에도 세포가 나뉘지 않고 핵만 늘어나기 때문에, 넓게 퍼진 노란 그물 전체가 여전히 한 개체입니다.

Q. 점균 실험 영상을 직접 볼 수 있나요?

A. 논문에 딸린 보충 자료에 관 망이 다듬어지는 과정을 담은 영상이 포함돼 있습니다. 학술지 접근이 어렵다면 대학과 연구기관이 공개한 실험 재현 영상으로도 굵어지고 사라지는 관의 변화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점균 실험이 공학에 남긴 것

도쿄 실험의 값어치는 설계자도 지도도 없이 국소적인 되먹임만으로 비용과 효율과 고장 대비를 동시에 저울질하는 망이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데 있다. 통신망이나 물류망처럼 계속 자라는 망은 처음부터 전체를 그릴 수 없는데, 그런 문제에서 이 방식은 매력적인 출발점이 된다.

남은 질문도 분명하다. 점균의 규칙은 두 지점 사이 최단 경로에서는 수렴이 증명됐지만, 수백 개 지점이 얽힌 실제 망에서 어떤 조건이면 좋은 해답에 이르는지는 아직 정리 중이다. 접시 위 노란 그물이 여전히 흥미로운 이유는 답을 찾는 방식 하나를 새로 보여줬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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