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줄 핵심 '엘 콜라초'는 엽기 이벤트도, 세례를 대신하는 의식도 아니다. 성체축일 행렬에서 악마 역할이 성체 앞에서 쫓겨나는 중세 종교극이 400년간 한 마을에 통째로 남은 것이다.
해마다 6월이면 인터넷에 같은 사진이 돈다. 노란색과 빨간색 옷을 입은 남자가 두 팔을 벌린 채, 길바닥 매트리스에 누운 갓난아기들 위로 몸을 날리는 장면. "스페인에는 악마가 아기를 뛰어넘는 축제가 있다"는 제목이 붙고 위험하다는 비난과 엽기라는 조롱이 뒤따른다. 그런데 이 사진 한 장에는 정작 중요한 것이 빠져 있다. 저 남자가 왜 하필 악마 차림인지, 그리고 왜 뛰어넘고 나서 도망치듯 사라지는지다. 그 이유를 알고 나면 이 장면은 전혀 다르게 보인다.
실제로 그 자리에서는 무슨 일이 벌어지나?
축제 이름은 '엘 콜라초(El Colacho)', 또는 '콜라초의 도약(El Salto del Colacho)'이다. 장소는 스페인 북부 부르고스주 사사몬 자치시에 속한 작은 마을 카스트리요 데 무르시아. 시기는 성체 성혈 대축일(코르푸스 크리스티) 바로 다음 일요일이라, 부활절 날짜를 따라 매년 5월 말에서 6월 말 사이를 오간다. 2025년에는 6월 18일부터 23일까지 이어지는 일정으로 치러졌다.
절정은 일요일 오후다. 지난 1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들이 흰 이불을 깐 매트리스 위에 나란히 눕고, 악마로 분장한 '콜라초'가 짧게 도움닫기를 한 뒤 아기들 위를 훌쩍 넘는다. 뛰어넘은 콜라초는 그대로 달아나고, 아기들에게는 장미 꽃잎이 뿌려지며 사제의 축복이 이어진 뒤 부모 품으로 돌아간다고 전한다. 점프하는 사람은 마을의 '미네르바 성체 형제회(Cofradía del Santísimo Sacramento de Minerva)' 구성원 중에서 뽑히고, 사고가 없도록 미리 연습한다. 2023년 콜라초 역을 맡았던 마리오 곤살레스는 지역지 인터뷰에서 그 역할을 두고 "무섭다기보다 존중에 가까운 감정"이라고 말했다.
| 장소 | 스페인 부르고스주 사사몬 자치시 카스트리요 데 무르시아 |
|---|---|
| 시기 | 성체축일 다음 일요일 (매년 5~6월 중 이동) |
| 주관 | 미네르바 성체 형제회 (1621년 창설 기록) |
| 등장인물 | 콜라초(악마)·아타발레로(북 치는 이)·단산테스(춤꾼) |
| 지정 | 1978년 부르고스 지역 최초의 '관광적 관심 축제', 현재 카스티야이레온주 관광적 관심 축제 |
왜 하필 '악마'가 뛰어넘을까?
핵심은 이 장면이 축제의 결말이라는 데 있다. 콜라초는 일요일 오후에 갑자기 등장하는 캐릭터가 아니다. 그는 축제 기간 내내 마을을 휘젓고 다니는 일주일짜리 연극의 악역이다. 노랑과 빨강이 섞인 '보타르가'라는 옷을 입고 '비리아'라 부르는 가면을 쓴 채, 한 손에는 '테라뉴엘라'라는 큼직한 캐스터네츠를, 다른 손에는 말총 채찍(cola de caballo)을 들고 마을 사람과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위협한다. 북을 치는 아타발레로가 그를 향해 구호를 외치며 맞서고, 둘의 실랑이가 며칠간 이어진다.
그러다 마지막 일요일, 성체 행렬이 거리로 나오면 상황이 뒤집힌다. 며칠간 마을을 괴롭히던 악마는 성체 앞에서 더 버티지 못하고, 길에 놓인 아기들을 뛰어넘어 마을 밖으로 달아난다. 즉 이 도약은 '악마가 아기를 건드리는 장면'이 아니라 악이 아기 위를 스쳐 지나 물러나는 장면이다. 중세 스페인의 성체축일 행렬에서는 성체 앞에 악마·괴물 역할이 서서 쫓겨나는 종교극(오토 사크라멘탈)이 흔했다. 대부분의 지역에서 사라진 그 연출이, 이 마을에서는 배역과 소품까지 그대로 살아남은 셈이다.
✨ 흥미로운 사실 콜라초의 채찍은 가죽이 아니라 말꼬리 털이다. 맞아도 아프기보다 놀라게 하는 도구에 가깝다. 이 축제에서 악마는 진짜 공포의 대상이라기보다, 며칠간 마을 사람들이 마음껏 놀리고 결국 쫓아내는 '패배가 예정된 악역'에 가깝다.
1620년일까, 1621년일까 — 자료를 맞대어 보면
영어권 기사들은 대체로 "1620년부터 이어진 축제"라고 쓰지만, 스페인어 자료는 1621년을 든다. 자료를 대조해 보면 두 숫자가 가리키는 대상이 다르다.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1621년 이 마을에 미네르바 성체 형제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이고, 축제의 연속 개최도 대개 그 시점부터 계산한다. '1620년'은 "17세기 초부터"를 반올림한 표현에 가깝다. 400년 넘은 축제라는 큰 그림은 맞지만, 특정 연도를 창시 시점으로 단정할 근거는 생각보다 얇다.
덩달아 퍼진 두 가지 주장도 갈라 둘 필요가 있다. 하나는 "1621년 교황 그레고리오 15세가 이 축제를 축복했다"는 이야기로, 영어권 매체들 사이에서 서로를 인용하며 반복되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1차 사료는 확인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기독교 이전의 풍요·하지 의례에서 왔다"는 설명인데, 이 역시 여러 매체가 "일부 역사가들은 그렇게 본다"는 식으로 전할 뿐 구체적 문헌 근거가 제시된 적은 없다. 흥미로운 가설과 확인된 사실을 나란히 놓고 읽는 편이 정확하다.
바티칸이 거리를 둔 축제가 왜 계속될까?
이 축제는 가톨릭 최고위층으로부터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아왔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스페인 사제들에게 이 의식과 거리를 두라고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유는 교리 문제다. 가톨릭 교리에서 원죄는 세례로 씻긴다. 그런데 축제가 "콜라초가 아기의 원죄를 가져간다"는 식으로 소개되면, 세례를 대신하는 민간 의식처럼 비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작 마을에서는 이 축제를 세례의 대체물로 여기지 않는다. 아기들은 평범하게 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콜라초의 도약은 그와 별개인 마을 전통이자 액막이에 가깝다. 살아 있는 민속을 지키려는 주민과 교리의 혼동을 우려하는 교회, 어느 한쪽이 옳다고 판정하기보다 400년 된 지역 관습이 제도 종교와 어떻게 공존해 왔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읽는 편이 이 축제에 가깝다. 마을은 지금도 해마다 이 의식을 이어가고 있다.
아기가 없으면 축제도 없다 — 149명 마을의 계산
가장 현실적인 위협은 논쟁도 안전 문제도 아니다. 인구다. 스페인 통계청(INE) 기준 2024년 1월 1일 현재 카스트리요 데 무르시아의 주민은 149명으로, 1년 전보다 8명이 줄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이 축제의 주인공은 '지난 1년 사이에 태어난 아기'인데, 주민 149명짜리 마을에서 해마다 아기가 태어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축제의 성격도 조용히 달라졌다. 원래는 마을에서 태어난 아기들만 매트리스에 누웠지만, 근래에는 스페인 각지와 해외에서까지 가족들이 아기를 안고 이 마을을 찾는다. 마을을 떠난 자녀들이 자기 아이를 데리고 돌아오는 것이다. 인구가 빠져나간 스페인 내륙, 이른바 '비워진 스페인(España vaciada)'에서 축제 하나가 마을을 1년에 한 번 사람으로 채우는 셈이다. 1978년 부르고스 지역 최초로 '관광적 관심 축제'에 지정된 이 행사는, 이제 마을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연례 점호에 가까워졌다. 현장 풍경은 부르고스 지역지 BURGOSconecta의 2023년 축제 보도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엘 콜라초는 어디서 언제 열리나요?
A. 스페인 부르고스주 사사몬 자치시의 마을 카스트리요 데 무르시아에서, 성체 성혈 대축일 다음 일요일에 열립니다. 부활절 날짜에 따라 매년 5월 말~6월 말 사이를 오갑니다.
Q. 아기가 다치지는 않나요?
A. 뛰는 사람은 미네르바 성체 형제회 구성원 중에서 뽑혀 미리 연습하며, 아기들은 매트리스 위에 눕고 뛰어넘은 직후 부모가 곧바로 데려갑니다. 이 의식으로 아기가 크게 다쳤다는 보도는 확인되지 않지만, 위험성을 지적하는 시선은 꾸준히 있습니다.
Q. 세례를 대신하는 의식인가요?
A. 아닙니다. 아기들은 성당에서 따로 세례를 받고, 콜라초의 도약은 별개의 마을 전통입니다. 다만 "원죄를 가져간다"는 표현 때문에 교회는 이 의식과 거리를 두라는 입장을 밝혀 왔습니다.
Q. 정말 1620년부터 이어진 축제인가요?
A. 기록으로 확인되는 것은 1621년 마을에 미네르바 성체 형제회가 세워졌다는 사실이며, 축제의 연속 개최도 보통 그때부터 셉니다. '1620년'은 17세기 초를 가리키는 어림값에 가깝고, 특정 연도를 창시 시점으로 단정할 근거는 뚜렷하지 않습니다.
Q. 마을 아기가 아니어도 참여할 수 있나요?
A. 전통적으로는 마을에서 태어난 아기만 참여했지만, 근래에는 외지와 해외에서 온 가족의 아기도 함께 눕습니다. 주민이 149명(2024년 기준)까지 줄면서 생긴 변화이기도 합니다.
기묘한 사진 한 장으로 소비되던 축제를, 일주일짜리 연극의 마지막 장면으로 놓고 보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악마는 아기를 위협하러 온 것이 아니라 아기를 넘어 물러나기 위해 온 것이고, 그 장면을 400년간 지켜온 마을에는 이제 149명이 남았다. 세계에서 가장 이상한 축제로 불리는 이 행사가 실제로 붙들고 있는 것은, 어쩌면 악이 아니라 사라져 가는 마을 그 자체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