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줄 요약
- 영국 쿠퍼스 힐 치즈 굴리기 대회에서 치즈를 잡는 사람은 없다. 우승 조건은 먼저 언덕 아래에 도착하는 것이다.
- 언덕 아래에서 참가자를 몸으로 받아내는 건 구조대가 아니라 지역 럭비 클럽 선수들이다.
- 2010년 공식 대회가 취소된 뒤 주최자가 없는 행사가 됐고, 그 공백은 2013년 경찰이 86세 치즈 제조자를 찾아가는 기묘한 장면으로 드러났다.
무게 3~4kg짜리 치즈 한 덩이가 경사 50%에 가까운 언덕을 굴러 내려간다. 최고 속도는 시속 100km를 넘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 뒤를 수백 명이 몸을 던져 쫓고, 언덕 아래에는 해마다 구급대가 대기한다. 영국 글로스터셔 브록워스의 쿠퍼스 힐 치즈 굴리기(Cooper's Hill Cheese-Rolling and Wake) 이야기다. 그런데 이 대회를 전하는 기사 대부분이 같은 지점에서 어긋난다. 참가자들이 저 치즈를 잡으려고 달린다는 설명이다. 실은 아무도 잡지 못하고, 참가자들도 그걸 알고 뛴다.
아무도 못 잡는 치즈를, 왜 쫓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우승 조건이 '치즈 잡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규칙상 승자는 언덕 아래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한 사람이고, 더블 글로스터 치즈는 출발 신호이자 상품일 뿐이다. 치즈는 출발 직후 1초 만에 사람의 손이 닿지 않는 속도로 달아난다. 흔히 인용되는 최고 속도는 시속 70마일(약 113km)이고, 지역 매체 소글로스는 최대 80마일까지 언급한다. 자료마다 숫자가 갈리는 건 계측값이 아니라 추정치이기 때문인데, 어느 쪽이든 사람이 따라잡을 속도가 아니라는 결론은 같다.
언덕은 길이 약 180m(200야드)에 경사 1:2, 즉 50% 안팎이다. 표면은 고르게 다듬은 잔디밭이 아니라 돌과 나뭇가지, 쐐기풀이 섞인 비탈이다. 서서 내려가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해서, 참가자 대부분은 출발 직후 균형을 잃고 구른다. 2023년에는 미국의 쿠퍼 커밍스가 13초 만에 언덕을 내려가 최단 기록으로 회자되기도 했다.
언덕 아래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 왜 하필 럭비 선수인가
이 대회의 진짜 안전장치는 헬멧도 매트리스도 아니다. 결승선 앞에 늘어선 지역 럭비 클럽 선수들, 이른바 '캐처(catchers)'다. 굴러 내려온 참가자는 스스로 멈출 수 없어, 그대로 두면 언덕 끝 울타리로 날아든다. 캐처들은 럭비 태클 기술로 이들을 받아 안아 최대한 부드럽게 멈춰 세운다. 잡는 대상이 치즈가 아니라 사람이라는 점에서, 이 대회에서 '캐처'라는 이름은 참가자가 아니라 이들에게 붙어 있다.
그럼에도 부상은 이 행사의 상수다. 1993년에는 16명이 다쳐 그중 4명이 중상을 입었고, 1997년에는 33건의 부상이 보고됐다. 2023년에는 6명이 병원으로 옮겨졌다. 여자부 우승자인 캐나다의 딜레이니 어빙은 정신을 잃은 채 결승선을 통과해, 의료 텐트에서 깨어난 뒤에야 우승 사실을 알았다. 2025년에도 2명이 병원으로 이송됐다.
✨ 흥미로운 사실 참가자들 사이에서는 비 온 뒤 진창이 된 언덕이 오히려 안전하다는 말이 돈다. 2024·2025년 연속 우승한 독일의 톰 코프케는 2025년 대회를 두고 전년과 달리 땅이 말라 있어 더 위험했고 그래서 부상자가 나왔다고 말했다. 무른 땅은 충격을 흡수하지만, 마른 땅은 몸을 튕겨 올린다.
500년 전통일까? 자료를 맞대어 보면
"500년, 혹은 600년 된 전통"이라는 설명이 널리 퍼져 있지만, 문헌으로 확인되는 범위는 그보다 훨씬 짧다. 최초 기록으로 자주 인용되는 것은 1826년 글로스터 타운 크라이어에게 보낸 전언이고, 영어권 백과 자료는 1836년 6월 9일자 지역지 〈Berrow's Worcester Journal〉 기사를 가장 이른 문헌 증거로 든다. 두 자료 모두 19세기 초의 것인데, 흥미롭게도 당시에 이미 "오래된 관습"이라고 적고 있다. 500년이라는 숫자는 1954년 도로시 스파이서의 영국 축제 연감 같은 후대 서술에서 굳어진 어림값에 가깝다.
기원 설명도 하나로 정해져 있지 않다. 매년 언덕을 쓰는 행사를 열어 공유지 방목권을 증명하던 관습이었다는 설과, 겨울의 끝을 기념해 불붙인 나뭇단을 언덕 아래로 굴리던 이교 의례에서 왔다는 설이 나란히 인용된다. 어느 쪽도 결정적 사료가 제시된 적은 없다.
2013년, 경찰이 찾아간 사람은 참가자가 아니라 86세 할머니였다
이 대회의 가장 기묘한 사건은 언덕 위가 아니라 언덕 밖에서 벌어졌다. 2009년 관중이 1만 5천 명까지 몰리면서(현장 수용 규모는 5천 명 수준으로 추정됐다) 안전 문제가 불거졌고, 결국 2010년 공식 대회가 취소됐다. 그런데 대회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해 100명 남짓이 모여 비공식으로 언덕을 굴렀고, 이후 이 행사는 공식 주최자가 없는 상태로 매년 이어지고 있다. 지역 매체 안내문에도 "조직하는 주체가 없으므로 참가자는 전적으로 본인 책임으로 참여한다"고 적혀 있다.
주최자가 없다는 건 안전 관리자가 없다는 뜻이자, 사고가 나도 책임을 물을 상대가 없다는 뜻이다. 그 공백이 드러난 해가 2013년이다. 경찰이 찾아간 곳은 언덕도 참가자도 아닌, 1988년부터 대회용 더블 글로스터를 만들어 온 처첨(Churcham) 농장의 낙농가 다이애나 스마트의 집이었다. 당시 그는 여든여섯이었다. 경찰은 굴러 내려간 치즈에 누가 다치면 제조자가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했고, 그해 언덕에서는 진짜 치즈 대신 가벼운 폼(foam) 모형이 굴렀다. 진짜 더블 글로스터는 이듬해에야 돌아왔다.
자료를 대조하다 보면 이 장면이 단순한 '과잉 규제 해프닝'이 아니라는 게 보인다. 주최자가 사라진 행사에서 법적 책임의 화살이 향할 곳을 찾다 보니, 언덕 근처에도 가지 않는 여든여섯 살 치즈 제조자가 남았던 것이다. 다이애나 스마트는 2021년 세상을 떠났고, 아들 로드 스마트가 지금도 대회용 치즈를 만든다.
| 장소 | 영국 글로스터셔 브록워스 쿠퍼스 힐 (GL3 4SB) |
|---|---|
| 시기 | 매년 봄 뱅크홀리데이 월요일 (2026년은 5월 25일 개최) |
| 치즈 | 더블 글로스터 3~4kg, 1988년부터 스마트 가족이 제작 |
| 참가 | 참가비·사전등록 없음, 내리막 경기는 만 18세 이상 |
| 최다 우승 | 크리스 앤더슨 23승 (2022년 은퇴) |
2026년 5월 25일 대회에서는 스물한 살의 네덜란드 청년 닐스 베네마르스가 첫 네덜란드인 우승자가 됐고, 톰 코프케도 한 경기를 가져갔다. 내리막 남자부를 영국인이 한 명도 가져가지 못한 첫해였다. 200년 가까이 브록워스 주민들의 마을 행사였던 언덕이, 이제는 유튜브를 보고 찾아온 전 세계 참가자들의 무대가 된 셈이다. 다음 대회 일정과 현장 안내는 글로스터셔 지역 매체 소글로스(SoGlos)의 대회 안내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자주 묻는 질문
Q. 치즈를 잡아야 우승인가요?
A. 아닙니다. 치즈는 출발 신호이자 상품일 뿐이고, 우승 조건은 언덕 아래 결승선에 가장 먼저 도착하는 것입니다. 치즈는 시속 100km를 넘는 속도로 굴러가 사실상 잡을 수 없습니다.
Q. 정말 500년 된 전통인가요?
A. 문헌으로 확인되는 것은 19세기 초 기록까지입니다. 1826년 글로스터 타운 크라이어에게 보낸 전언과 1836년 지역지 기사가 초기 증거로 꼽히며, 두 기록 모두 당시 이미 오래된 관습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500년설은 후대 서술에서 굳어진 어림값에 가깝습니다.
Q. 부상자는 얼마나 나오나요?
A. 해마다 다릅니다. 1993년 16명(중상 4명), 1997년 33건의 부상이 기록됐고, 2023년에는 6명이 병원으로 옮겨졌습니다. 골절과 뇌진탕이 흔하며, 사망 사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Q. 2013년에 왜 가짜 치즈를 굴렸나요?
A. 경찰이 치즈를 만든 86세의 다이애나 스마트에게 부상 발생 시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하면서, 그해에는 가벼운 폼 모형 치즈가 사용됐습니다. 진짜 더블 글로스터는 이듬해 복귀했습니다.
기묘한 영상 하나로 소비되는 이 대회를 규칙과 기록으로 되짚어 보면 남는 그림은 조금 다르다. 아무도 잡을 수 없는 물건을 쫓아 언덕을 굴러 내려오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을 받아내려고 매년 아래에 서는 이웃들. 이 행사를 200년 가까이 굴러가게 만든 힘은 어쩌면 치즈가 아니라 그 두 번째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