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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구 2만 명, 중세 런던보다 컸던 북미 도시 카호키아

글 · 역사·유적 · · 약 11분 · 조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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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미시시피강을 건너 동쪽으로 15분쯤 달리면, 고속도로와 창고 지대 사이로 잔디에 덮인 커다란 언덕이 솟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대개 자연 지형으로 넘긴다. 계단을 밟고 올라가 보면 생각이 바뀐다. 정상은 평평하게 다져져 있고, 발밑의 흙은 사람이 바구니에 담아 한 짐씩 져 나른 것이다.

언덕의 이름은 몽크스 마운드다. 미국 일리노이주 콜린스빌 일대에 남은 카호키아 유적의 중심 구조물로, 유럽인이 북아메리카 내륙에 닿기 훨씬 전에 완성됐다. 그리고 유럽인이 이 근처에 도착했을 때, 언덕을 쌓은 도시에는 이미 아무도 살고 있지 않았다.

수치 확인은 2026년 9월에 진행했다. 카호키아 마운즈 사적지의 공식 안내, 미국 국립공원청의 유적 소개 페이지, 그리고 2019년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에 실린 호스슈호 퇴적물 연구를 나란히 놓고 대조했다. 다만 '런던보다 컸다'는 비교가 어느 해의 런던 인구 추정치를 기준으로 삼았는지는 두 안내 페이지 모두 밝히지 않아, 그 부분은 확정하지 않고 남겨 둔다.

서기 1100년 무렵 4,000에이커가 넘는 땅 위에 2만 명 가까이 살던 북아메리카 최대의 도시는, 14세기에 이르러 미시시피 문화 이전 수준의 인구로 되돌아갔다.
AI로 재현한 서기 1100년 무렵 카호키아의 몽크스 마운드와 도시 전경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카호키아는 실제로 얼마나 큰 도시였나?

카호키아 마운즈 사적지 공식 안내는 전성기인 서기 1100년 무렵 이 도시가 4,000에이커(약 16제곱킬로미터)가 넘는 범위로 퍼져 있었고 2만 명에 가까운 인구를 품었다고 적는다. 원래 약 120기의 흙 마운드가 있었고, 남아 있는 80기 가까운 마운드 가운데 72기를 사적지가 보호하고 있다.

규모를 실감하게 하는 것은 인구보다 공사량이다. 사적지 안내에 따르면 도시를 둘러싼 목책은 길이가 2마일(약 3.2킬로미터)에 이르렀고, 서기 1100년 무렵 처음 세워진 뒤 200년에 걸쳐 세 차례 다시 세워졌다. 한 번 세울 때마다 지름 30센티미터, 길이 6미터가량의 참나무·히코리 통나무가 필요했다.

🌲 목책 한 번에 통나무 1만 5천~2만 개  사적지 안내가 제시한 수치다. 네 차례 공사를 합치면 통나무만 6만 개 규모가 된다. 금속 도구도, 바퀴도, 짐을 끄는 가축도 없이 벌목·운반·건립을 반복했다는 뜻이다.

천문 관측용으로 해석되는 원형 기둥 구조물도 남았다. 사적지 안내는 서기 900년에서 1100년 사이 200년 동안 여러 차례 다시 세워진 이 구조물 가운데 가장 온전히 발굴된 세 번째 원이 기둥 48개짜리였고, 복원된 원의 지름이 410피트(약 125미터)라고 밝힌다. 기둥은 지름 40~50센티미터에 높이 6미터가량이었다.

중심에 선 몽크스 마운드는 그 자체로 규모의 지표다. 미국 국립공원청 소개 페이지는 방문객이 100피트(약 30미터) 높이의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다고 안내한다. 바퀴도, 짐을 끄는 가축도, 금속 삽도 없이 바구니 한 짐씩 흙을 날라 그 높이를 만들었다는 점이 이 유적을 다른 고대 도시와 구별한다.

카호키아가 '런던보다 컸다'는 비교는 언제의 런던과 견준 것인가?

두 공식 페이지가 비교 시점을 각각 다르게 적어 두었다. 사적지 안내는 인구 정점을 서기 1100년 무렵으로 잡으면서 "그 시절 런던보다 컸다"고 쓰고, 미국 국립공원청 소개 페이지는 "1250년 런던보다 큰 문명"이라고 쓴다. 근거로 삼은 런던 인구 추정치는 두 페이지 모두 본문에 싣지 않았다.

연대를 따져 보면 두 표기의 무게가 달라진다. 2019년 PNAS 논문은 카호키아의 인구 정점을 로만기(Lohmann phase), 곧 서기 1050~1100년으로 본 선행 연구들을 정리하고 있다. 1250년은 정점에서 150년쯤 지난 시점이므로, 두 문장을 같은 뜻으로 읽으면 도시의 규모를 실제와 다른 국면에 놓게 된다.

제목과 요약에 1100년을 함께 적어 둔 이유가 여기 있다. 비교 문구 자체는 두 기관이 모두 쓰고 있으므로 인용하되, 기준 연도는 인구 정점 시점으로 통일해 표기한다. 1250년이라는 연도는 국립공원청 페이지의 표기로만 남겨 둔다.

정점과 1250년 사이의 150년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다음 절에서 다룬다. 미리 밝혀 두면, 이 구간은 도시가 이미 줄어들기 시작한 뒤의 시간이다. 같은 도시라도 어느 국면을 잘라 보느냐에 따라 '북미 최대'라는 수식이 가리키는 실체가 달라진다.

카호키아를 비운 원인으로 지목돼 온 세 갈래 설명

카호키아의 소멸을 설명하는 가설은 생태 자멸, 기후 변동, 사회·정치적 해체라는 세 갈래로 갈린다. 세 갈래는 양립할 수 있고, 최근 연구들은 대체로 여러 요인이 겹쳤다는 쪽으로 수렴한다. 갈리는 것은 각 요인에 얼마만큼의 몫을 주느냐다.

첫 번째 갈래는 오랫동안 가장 널리 인용된 설명이다. 목책과 건축에 쓸 나무를 대량으로 베어 낸 결과 비탈이 침식되고 홍수가 잦아져 스스로 무너졌다는 시나리오다. 2021년 학술지 Geoarchaeology에 실린 랭킨 연구팀의 층서 조사(DOI 10.1002/gea.21848)는 마운드가 놓인 옛 표토층이 산업 개발 이전까지 안정적으로 유지됐다고 보고해, 이 시나리오가 전제한 침식 흔적을 확인하지 못했다.

🧪 호수 바닥의 분변 스타놀로 인구를 센다  화이트 연구팀은 호스슈호 퇴적물에 남은 분변 유래 화합물의 양을 카호키아 일대 인구의 대리지표로 삼았다. 문서 기록이 없는 사회의 인구 곡선을 지층에서 직접 읽어 내는 방식이다.

두 번째 갈래는 기후다. 2019년 PNAS에 실린 화이트 연구팀의 논문은 서기 1150년 무렵 미시시피강의 범람과 농사에 해로운 온난기 가뭄이 함께 나타났고, 이것이 주민들에게 상당한 부담을 만들었을 수 있다고 보고했다. 논문이 분석한 홍수 사건의 모형 추정 중앙 연대는 약 1160년이다.

같은 논문은 감소의 속도도 함께 짚는다. 카호키아의 인구는 14세기에 이르러 미시시피 문화 이전 수준으로 내려갔다. 화이트 연구팀이 인용한 파우케탓·로피노의 추정에 따르면, 정점기의 인구는 직전 150년간의 인구보다 5~10배 많았다.

세 번째 갈래인 사회·정치적 해체는 지층에 흔적을 거의 남기지 않아 검증이 가장 어렵다. 의례 중심지의 기능 변화, 주변 취락과의 관계 재편 같은 요인은 유물 배치와 건축 양식의 변화로만 추정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 연구들은 하나의 원인을 지목하는 대신, 연대가 잘 잡힌 여러 증거를 겹쳐 놓는 방식을 택한다.

세 갈래를 나란히 놓으면 각 설명이 어떤 종류의 증거로 검증되는지가 드러난다. 생태 자멸은 흙의 층서로, 기후는 호수 퇴적물의 화학 성분과 산소 동위원소로, 사회 변동은 유물의 배치와 건축 양식으로 확인한다. 검증 수단이 서로 다르니 한 연구의 결과가 다른 갈래를 곧바로 기각하기도 어렵다.

"런던보다 컸다"는 말부터 정리하고 가자

Q. 카호키아 유적은 지금 일반인이 방문할 수 있나요?

A. 일리노이주에 있는 카호키아 마운즈 사적지로 개방돼 있으며, 미국 국립공원청 소개 페이지는 5.4마일(약 8.7킬로미터)이 넘는 탐방로와 해설 전시관이 갖춰져 있다고 안내합니다. 입장료 대신 권장 기부금 방식을 쓰고 있으나 금액과 운영 시간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확인하시는 편이 좋습니다.

Q. 몽크스 마운드 정상까지 직접 올라갈 수 있나요?

A. 국립공원청 소개 페이지는 방문객이 100피트(약 30미터) 높이의 마운드에 올라갈 수 있다고 적고 있습니다. 계단이 놓여 있어 정상 평지까지 걸어 올라갈 수 있으며, 위에서 보면 도시 배치와 다른 마운드들의 위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Q. 카호키아를 세운 사람들은 누구였나요?

A. 미시시피 문화라고 불리는 농경 사회 집단이 세운 도시입니다. 문자 기록을 남기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이름을 무엇이라 불렀는지는 전해지지 않으며, '카호키아'라는 이름도 훨씬 뒤에 이 지역에 살던 다른 집단의 이름에서 따온 것입니다.

Q. 유럽인이 도착하기 전에 이미 비어 있었나요?

A. 그렇습니다. 2019년 PNAS 논문이 정리한 연대에 따르면 인구는 서기 1150년 무렵부터 줄기 시작해 14세기에 미시시피 문화 이전 수준으로 내려갔습니다. 유럽인이 이 내륙 지역에 닿은 것은 그보다 한참 뒤여서, 접촉으로 인한 질병이나 정복은 소멸의 원인 목록에 들어가지 않습니다.

카호키아를 다루는 최근 연구의 초점은 "무엇으로 확인할 수 있나"에 놓여 있다. 문자 기록이 없는 도시의 인구 곡선을 호수 바닥의 화합물로 재구성하고, 오래 인용돼 온 자멸 서사를 흙의 층서로 되짚는 작업이 지난 몇 년 사이에 이어졌다. 잔디에 덮인 언덕은 그대로지만, 언덕을 읽는 도구는 계속 바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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