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줄 요약
- 매년 우기 첫 비가 신호탄이 되어, 4천만~5천만 마리의 붉은 게가 숲에서 바다로 한꺼번에 행진한다.
- 산란은 아무 날에나 벌어지지 않는다. 달의 마지막 사분기, 동트기 직전 물러가는 만조에 정확히 맞춰진다.
- 노랑미친개미로 반 토막 났던 개체수는 2mm짜리 말벌을 이용한 생물학적 방제 뒤 다시 1억 마리 이상으로 회복됐다.
인도양 한가운데, 인구 2천 명이 채 안 되는 호주령 크리스마스섬. 이 작은 섬에서는 매년 우기의 첫 비가 떨어지는 순간, 아스팔트 도로가 통째로 붉게 물든다. 자동차가 멈추고, 사람들은 갈퀴를 든다. 숲에서 쏟아져 나온 수천만 마리의 붉은 게가 일제히 바다를 향해 걷기 시작하기 때문이다. 지구에서 가장 거대한 육상 동물 이동 중 하나로 꼽히는 이 장관이 어떻게, 그리고 왜 벌어지는지 자료를 하나씩 대조해 정리했다.
붉은 게는 왜 한꺼번에 바다로 향할까?
답은 단 하나, 산란이다. 크리스마스섬 붉은 게(Gecarcoidea natalis)는 평생을 축축한 열대우림 바닥에서 보내는 육지 게지만, 알만큼은 반드시 바닷물에 풀어야 부화한다. 그래서 번식기가 오면 숲에 흩어져 살던 게들이 방향을 맞춰 해안으로 내려온다. 섬에는 1억 마리가 넘는 붉은 게가 살고, 그중 4천만~5천만 마리가 이 대이동에 참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짧게는 며칠, 길게는 3주 가까이 걸리는 여정이다.
달과 조수가 정한 시간표 — 어떻게 날짜를 맞출까?
대이동의 방아쇠는 우기의 첫 비다. 하지만 비 하나만으로 날짜가 정해지지는 않는다. 실제 산란은 달의 마지막 사분기, 동트기 직전 만조가 물러가기 시작하는 그 짧은 시간에 집중된다. 조수 차가 가장 작은 이 시점에 알을 풀면, 파도에 게가 쓸려가지 않으면서도 알은 바다로 실려 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흥미로운 건 게들이 이 조건을 스스로 조율한다는 점이다. 비가 늦게 오면 산란 적기를 놓치지 않으려 걸음을 서두르고, 비가 일찍 오면 중간에 먹고 마시며 느긋하게 이동한다. 즉 '비'는 출발을 알리는 필요조건일 뿐, 실제 산란 날짜는 '달·조수'라는 또 다른 조건이 맞아떨어져야 결정된다. 게들이 아무 달력도 없이 이 천문 시계를 어떻게 그토록 정확히 읽어내는지는 아직 완전히 밝혀지지 않았다.
수컷이 먼저, 그다음 암컷 — 대이동의 순서
행렬에는 순서가 있다. 호주 크리스마스섬 국립공원 설명에 따르면 수컷이 먼저 해안에 도착해 몸에 수분을 채운 뒤, 해안 낮은 단구에 굴을 판다. 좋은 굴을 두고 수컷끼리 다투기도 한다. 뒤이어 도착한 암컷과 굴 근처에서 짝짓기를 하고, 수컷은 다시 바다에 몸을 적신 뒤 숲으로 돌아간다.
남은 암컷은 굴 속에서 약 2주간 알을 품는다. 암컷 한 마리가 품는 알은 최대 10만 개에 이른다. 그리고 마지막 사분기 만조가 물러가는 새벽, 암컷들이 물가에 모여 알을 바다로 털어 넣고 곧장 숲으로 되돌아간다.
✨ 흥미로운 사실 암컷들이 알을 푸는 시기에 맞춰, 세계에서 가장 큰 물고기인 고래상어가 크리스마스섬 앞바다로 몰려든다. 갓 부화한 수많은 유생이 이들에겐 계절 한정 만찬인 셈이다.
바다로 간 알은 어떻게 될까 — 10년에 한두 번의 도박
여기서부터가 이 이야기의 반전이다. 바다에 풀린 알은 곧바로 유생으로 부화해 약 한 달간 여러 단계를 거치며 자란다. 살아남은 유생은 '메갈로파'라는 새우 비슷한 형태가 되어 해안 웅덩이에 1~2일 머문 뒤, 5mm 남짓한 새끼 게로 변태해 물 밖으로 올라온다. 그리고 9일에 걸쳐 섬 중심부의 숲으로 걸어 들어간다.
문제는 생존율이다. 유생은 고래상어·쥐가오리·물고기의 먹이가 되어 99% 이상이 바다에서 사라진다. 그래서 대부분의 해에는 새끼 게가 거의, 혹은 전혀 돌아오지 않는다. 다만 10년에 한두 번, 조건이 기막히게 맞아떨어지는 해에 어마어마한 수가 한꺼번에 살아 돌아오고, 그 한 번의 대박이 섬의 개체수를 수십 년간 지탱한다. 매년의 화려한 행진 이면에, 번식의 성공은 사실 '드물게 몰아치는 도박'에 가깝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도로를 멈추는 게들 — 크랩 브리지와 갈퀴
수천만 마리가 도로를 건너니 사람과 부딪히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섬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게를 위한 다리를 만들었다. 머레이 로드 위에 놓인 높이 약 5m의 '크랩 브리지'가 그것으로, 게들은 이 다리를 타고 번잡한 도로를 안전하게 넘는다. 도로 아래에는 지하 통로도 뚫려 있다.
그래도 모든 도로를 막을 수는 없다. 국립공원 관리인과 자원봉사자들은 이동 기간에 물리적 울타리를 세워 게를 유도하고, 지하 통로를 청소하며, 핵심 도로를 통제한다. 길이 좁은 곳에서는 정원용 갈퀴로 게를 조심스레 도로 밖으로 쓸어내 사고를 막는다. 자연현상 하나가 섬 전체의 교통 규칙을 몇 달간 바꿔놓는 셈이다.
| 위치 | 인도양 호주령 크리스마스섬 |
|---|---|
| 서식 규모 | 1억 마리 이상 (이동 참여 4천만~5천만) |
| 이동 시기 | 우기 첫 비, 주로 10~12월 |
| 산란 타이밍 | 마지막 사분기 달, 새벽 물러가는 만조 |
한때 사라질 뻔했다 — 노랑미친개미와 2mm 말벌
이 붉은 물결은 당연한 풍경이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섬에 침입한 노랑미친개미(yellow crazy ant)가 붉은 게의 최대 위협으로 떠올랐다. 이 개미는 1㎡당 최대 1,000마리에 이르는 '슈퍼콜로니'를 이루는데, 이때 뿜어내는 개미산이 지역 게 무리를 통째로 몰살시킨다. 그렇게 죽어 나간 육상 게가 수천만 마리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반전은 아주 작은 곳에서 왔다. 관리 당국은 2017년, 길이 2mm 남짓한 미세 말벌을 섬에 들여왔다. 이 말벌은 노랑미친개미의 먹이인 단물을 만들어 주는 특정 깍지벌레만 골라 공격하도록 극도로 숙주 특이적이다. 개미의 식량줄을 끊는 간접 전략이 통하면서 슈퍼콜로니가 억제됐다. 그 결과 붉은 게 개체수는 최근 5년 사이 약 5천만 마리에서 1억 마리 이상으로 두 배 넘게 회복됐다. 흔히 인용되는 '1억 마리'라는 숫자 자체가, 사실은 붕괴 직전에서 되살아난 회복의 결과인 셈이다.
물론 완전한 승리는 아니다. 개미를 완전히 박멸한 것이 아니라 억눌러 균형을 잡은 것이고, 외래종 방제는 늘 새로운 부작용의 가능성을 안고 있어 장기 관찰이 필요하다. 그럼에도 작은 말벌 한 종이 섬 하나의 상징을 되살린 이 사례는, 생태 복원이 반드시 거창한 방법으로만 이뤄지는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자주 묻는 질문
Q. 붉은 게 대이동은 언제 볼 수 있나요?
A. 우기의 첫 비가 내릴 때 시작되며, 보통 10월에서 12월 사이입니다. 다만 산란 절정은 달의 마지막 사분기에 맞춰지므로 해마다 정확한 날짜가 달라집니다.
Q. 게는 왜 하필 새벽 만조에 알을 풀까요?
A. 조수 차가 가장 작은 마지막 사분기의 물러가는 만조 때 알을 풀면, 어미 게는 파도에 쓸려가지 않으면서 알만 바다로 흘려보낼 수 있기 때문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Q. 새끼 게는 매년 돌아오나요?
A. 아닙니다. 유생의 99% 이상이 바다에서 잡아먹혀, 대부분의 해에는 거의 돌아오지 않습니다. 10년에 한두 번 대량으로 살아 돌아오는 해가 개체수를 유지합니다.
Q. 붉은 게는 사람에게 위험한가요?
A. 위험하지 않습니다. 붉은 게는 주로 낙엽과 열매, 죽은 동물을 먹는 청소부 역할을 하며 사람을 공격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동 중 로드킬로 위협받는 쪽은 게입니다.
Q. 노랑미친개미 문제는 지금 해결됐나요?
A. 2017년 도입한 미세 말벌 생물학적 방제로 슈퍼콜로니가 크게 억제되어 개체수가 회복됐습니다. 다만 완전 박멸이 아닌 억제 단계라 지속적인 관리와 관찰이 필요합니다.
크리스마스섬의 붉은 물결은 단순히 게가 많아서 벌어지는 소동이 아니다. 달과 조수를 읽는 정교한 본능, 99%가 사라지는 냉혹한 확률, 그리고 사람이 다리를 놓고 작은 말벌까지 동원해 지켜낸 회복이 겹쳐 만들어낸 풍경이다. 도로를 붉게 물들이는 그 며칠은, 사실 섬 전체가 오랜 시간 아슬아슬하게 지켜온 균형의 한순간인 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