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템스강 하구 몬셀 요새는 설계에서 이미 운명이 갈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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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재현한 템스강 하구 몬셀 해상 요새의 녹슨 강철 타워들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켄트 해안의 항구에서 배로 북쪽 바다를 한 시간쯤 나가면 수평선 위로 네 발 달린 상자들이 하나씩 솟는다. 서로를 잇던 철제 통로는 대부분 끊겨 물 위에 늘어져 있고, 붉게 삭은 외벽에는 창문 자리만 검게 뚫려 있다. 템스강 하구에 남은 몬셀 요새(Maunsell Forts)다.

⚓ 질문 하나로 먼저

몬셀 요새는 하나의 전쟁, 하나의 목적으로 바다에 놓였는데 왜 어떤 것에는 사람이 눌러살고 어떤 것은 통로째 무너졌을까?

몬셀 요새는 육군형과 해군형이라는 두 갈래로 설계돼 골격 자체가 달랐다. 켄트주 의회 기록에 따르면 육군형 레드샌즈는 1943년 일곱 개의 타워로 배치됐고, 해군형은 콘크리트 판 한 장 위에 속 빈 원통 두 개를 세운 한 덩어리였다.

덩어리로 만든 해군형 러프스 타워에는 1967년부터 '시랜드 공국'을 자처하는 가족이 들어가 살았고, 타워를 흩어 놓은 육군형은 통로가 끊기면서 접근 자체가 어려워져 지금은 자원봉사 단체의 복원 대상으로 남았다.

몬셀 요새는 1943년 템스강 하구에 일곱 개 타워로 놓였다

켄트주 의회가 운영하는 문화유산환경기록(HER)은 레드샌즈 육군 요새(몬셀 요새 U6)를 1943년 이 지점에 배치된 제2차 세계대전 해상 요새로 적고, 일곱 개의 타워로 이뤄져 레이더와 대공포를 갖췄다고 기록한다.

임무는 독일군의 기뢰 부설로부터 템스강으로 들어오는 항로를 지키는 것이었다. 같은 기록은 쉬버링샌즈(U7)와 이미 사라진 노어(U5) 항목에도 '일곱 개의 타워'와 '레이더·대공포'라는 같은 표현을 쓴다. 템스강 하구의 육군형 셋이 한 설계에서 나왔다는 뜻이다.

기록의 형식도 눈여겨볼 만하다. 세 항목은 바다 위 구조물인데도 육상 유적과 같은 '건물 기록'으로 분류돼 있고, 레드샌즈에는 TR 0786 7962라는 격자 좌표가 붙어 있다. 출처란에는 켄트주 의회가 1987년부터 이어 온 자체 보유 기록 하나만 올라 있다.

확인은 2026년 8월에 했다. 배치 연도와 타워 수, 해적방송 시기는 켄트주 의회 문화유산환경기록의 U5·U6·U7 항목에서 가져왔고, 복원 계획과 단체 등록번호는 프로젝트 레드샌드 CIO가 자기 사이트에 밝힌 표기를 따랐다. 흔히 함께 인용되는 격추 전과는 켄트주 기록에 없어 아래 FAQ에 유보한 채로 남겨 두었다.

몬셀 요새의 육군형과 해군형은 골격이 어떻게 달랐을까

차이는 흩어 놓았느냐 묶어 놓았느냐에 있었다. 육군형은 네 다리로 선 강철 타워 일곱 기를 좁은 통로로 이어 붙인 군집이었고, 해군형은 콘크리트 폰툰(물에 띄웠다가 바닥에 앉히는 상자형 구조물) 한 장 위에 속 빈 원통 두 개를 세운 단일 구조물이었다.

해군형의 폰툰은 길이 51.2미터·너비 21.2미터였고, 그 위에 높이 약 18미터·지름 약 7.3미터의 원통 두 개가 올라갔다. 전체 무게는 약 4,500톤으로 추정된다. 원통 속에는 승조원 숙소와 식당·작전실·창고가 층층이 들어앉았다.

바다로 먼저 나간 쪽은 해군형이었다. 러프스 타워가 1942년 2월 11일 바닥에 앉은 것을 시작으로 선크헤드·텅사운즈·노크존이 그해 8월까지 차례로 자리를 잡았고, 육군형 셋은 이듬해인 1943년에야 배치됐다. 두 설계 사이에는 한 해의 간격이 있었다.

육군형 타워는 기능을 밖으로 쪼개 세웠다. 가운데 통제탑을 두고 대공포탑들이 반원으로 둘러섰으며, 탐조등탑은 한 발 물러난 자리에 따로 섰다. 타워와 타워를 잇는 좁은 통로가 사람과 탄약이 오가는 유일한 길이었다.

⚓ 바다로 나간 다음 이야기  프로젝트 레드샌드 CIO는 자기 소개문에서, 몬셀 요새를 육상에서 만들어 통째로 끌고 나가 앉힌 방식이 1940년대 후반 멕시코만의 첫 해양 석유 시추 플랫폼 건설로 이어졌다고 적는다. 출처는 단체의 소개문이고, 학술 문헌으로는 대조하지 못했다.

시랜드 공국은 왜 해군형 러프스 타워에 들어섰을까

해군형만 사람이 통째로 들어가 살 수 있는 골격이었기 때문이다. 폰툰과 원통 안에 숙소·식당·창고가 이미 갖춰져 있었고, 바깥에 걸친 통로가 없어도 내부가 하나로 이어져 있었다.

러프스 타워는 서퍽 해안에서 약 11킬로미터, 에식스 해안에서 약 13킬로미터 떨어진 모래톱 위에 앉아 있다. 로이 베이츠는 1967년 9월 2일 이곳을 점거해 '시랜드 공국'의 독립을 선언했다. 당시 영국 영해는 3해리였고 러프스 타워는 그 바깥이었다.

1987년 영국이 영해를 12해리로 넓히면서 러프스 타워의 위치는 국제적으로 영국 영해 안이 됐다. 그럼에도 베이츠 가족은 점유를 이어 왔고, 시랜드를 국가로 승인한 주권국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다. 1968년 영국 법원이 베이츠 부자 재판에서 당시 영해 밖이라는 이유로 관할을 인정하지 않았다는 서술은 여러 2차 자료가 같게 전하지만, 판결문 원문은 확인하지 못해 그 이상으로 옮기지 않는다.

육군형 요새에는 1960년대에 해적방송국들이 들어왔다. 켄트주 기록은 레드샌즈에서 라디오 인빅타와 라디오 K.I.N.G.가 방송했고 최종 방송이 1967년이었다고 적는다. 쉬버링샌즈에는 1964년 스크리밍 로드 서치가 시작한 라디오 서치가 들어와 라디오 시티로 이름을 바꿨다가 역시 1967년 폐쇄됐다.

레드샌즈와 쉬버링샌즈는 지금 어떤 상태일까

레드샌즈는 일곱 기가 모두 남았고 쉬버링샌즈는 여섯 기다. 1963년 6월 7일 화물선 리베르스보리호가 들이받으면서 타워 한 기가 바다로 넘어갔는데, 사람이 다치지는 않았다.

노어 요새는 더 일찍 사라졌다. 켄트주 기록은 노어가 주 항로에 가까이 놓여 1950년대에 배와 두 차례 부딪혔고 1959~1960년에 해체됐다고 적는다. 오늘날 그 좌표에는 기록만 남아 있다.

해군형 넷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선크헤드는 1967년 폭약으로 철거돼 다리 밑동만 남았고, 텅사운즈는 바닥이 파이는 세굴을 견디지 못해 1996년 2월 폭풍에 주저앉았으며, 노크존은 1956년 이후 방치됐다. 온전한 형태로 서 있는 해군형은 러프스 타워 한 기뿐이다.

프로젝트 레드샌드가 레드샌즈를 복원 대상으로 고른 근거도 이 상태 차이에 있다. 단체는 소개문에서 레드샌즈를 두 육군 요새 가운데 나은 쪽이며 타워 일곱 기가 온전히 남아 있고 해안에 가까우며 주 항로에서 비켜나 있다고 적는다.

켄트주 기록은 세 요새 모두 보호 지정이 없다고 적는다

노어·레드샌즈·쉬버링샌즈 항목은 보호 지정란이 모두 '기록 없음(None recorded)'으로 비어 있다. 세 기록의 최종 수정일은 2026년 5월 8일로 같다.

법정 보호가 걸려 있지 않다는 것은 이 구조물들의 앞날이 제도가 아니라 개별 주체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프로젝트 레드샌드는 등록 자선단체 번호 1172590으로 등록돼 있으며, 2003년까지 이 구조물들의 보존이 진지하게 논의된 적이 없었다고 스스로 적는다.

보호 지정이 없다는 것은 철거를 막을 법적 장치도 마련돼 있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프로젝트 레드샌드는 소개문에서 몬셀 타워의 앞날을 정할 논의가 정부 기관들 사이에서 진행 중이라고 적는다.

복원은 타워를 한 기씩 되살리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일반 방문객이 소규모로 안에 들어가 보는 일정은 아직 장래 계획으로 적혀 있고, 지금 예약할 수 있는 것은 배로 요새 가까이 다가가는 쪽이다.

몬셀 요새를 찾아가기 전에 걸리는 대목들

Q. 요새 타워 안에 일반인이 들어가 볼 수 있나요?

A. 아직 어렵습니다. 프로젝트 레드샌드는 복원을 타워 단위로 진행하면서, 안전하게 방문할 수 있는 수준까지 되살리는 것을 장기 목표로 밝히고 있습니다. 일반 대중이 소규모로 둘러보는 일정은 장래 계획으로 적혀 있습니다.

Q. 배를 타고 요새 가까이 다가가는 방법은 있나요?

A. 있습니다. 프로젝트 레드샌드는 보급선 사업자와 함께 요새로 가는 배편 예약을 안내하고 있습니다. 다만 안내되는 일정은 해상에서 다가가는 쪽이며, 타워 내부 관람과는 별개입니다.

Q. 몬셀 요새는 모두 몇 기나 만들어졌나요?

A. 해군형 네 기와 육군형 여섯 기가 이름까지 확인됩니다. 육군형은 템스강 하구에 노어·레드샌즈·쉬버링샌즈가, 리버풀만에 퀸스·폼비·버보가 놓였습니다. 리버풀만 쪽을 네 기로 적는 자료도 있어 총수는 자료마다 갈립니다.

Q. 시랜드에는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나요?

A. 베이츠 가족과 관계자들이 1967년 이후 러프스 타워를 점유해 왔습니다. 다만 시랜드를 국가로 공식 승인한 나라는 없고, 1987년 영국이 영해를 12해리로 넓힌 뒤로 그 위치는 국제적으로 영국 영해로 인정됩니다.

Q. '몬셀'이라는 이름은 어디서 왔나요?

A. 설계자의 이름입니다. 영국 토목기술자 가이 앤슨 몬셀이 이 요새들을 설계했고, 프로젝트 레드샌드도 소개문에서 요새의 착상을 그의 이름으로 돌리고 있습니다.

Q. 요새가 적기를 격추했다는 수치는 믿어도 되나요?

A. 이 글에서는 확정하지 않았습니다. 템스강 하구 요새들이 항공기 22대와 비행폭탄 약 30발을 떨어뜨렸다는 값이 여러 2차 자료에 같은 형태로 실려 있으나, 켄트주 문화유산환경기록에는 이 수치가 없어 1차 기록으로 대조하지 못했습니다.

몬셀 요새의 두 갈래는 여든 해 뒤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남았다. 한쪽은 한 가족이 국기를 걸고 사는 콘크리트 덩어리가 됐고, 다른 쪽은 통로가 끊긴 채 자원봉사자들의 배를 기다리는 강철 군집이 됐다. 갈림길을 만든 것은 전과 기록이 아니라 설계도였다.

켄트주 기록의 비어 있는 보호 지정란은 그 갈림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바다 위에 남은 타워와 다리들이 앞으로 어느 쪽으로 갈지는, 제도보다 배를 타고 나가는 사람들의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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