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전설로만 전해지던 항구 도시 헤라클레이온은 정말 바다 밑에 있었을까?
A. 2000년 프랑크 고디오가 이끈 유럽수중고고학연구소(IEASM) 팀이 이집트 아부키르만, 해안에서 6.5km 떨어진 수심 약 10m 해저에서 도시를 통째로 찾아냈다.
붉은 화강암으로 만든 높이 5.4m의 신상과 닻 700여 개, 배 125척이 진흙 아래에서 차례로 확인됐다.
발굴 기관인 IEASM이 공개한 조사 기록과 2021년 발굴 보도를 2026년 9월에 맞춰 읽으며 내용을 확인했고, 도시가 물에 잠긴 정확한 과정은 아직 연구가 이어지는 대목이라 본문에는 확인된 범위만 적었다.
2000년 초여름 이집트 알렉산드리아 앞 아부키르만, 한 치 앞이 안 보이는 흐린 물속에서 잠수사들이 진흙에 반쯤 묻힌 거대한 검은 덩어리를 더듬고 있었다. 손끝에 걸린 것은 매끈하게 다듬어진 화강암, 사람의 몸이 통째로 새겨진 거대한 조각상이었다.
진흙을 걷어내자 물속에서 도시 하나가 통째로 모습을 드러냈다. 서기 8세기 무렵 바다에 잠긴 뒤 1,200년 가까이 옛 문헌 속 이름으로만 남아 있던 항구 도시, 헤라클레이온이었다.
헤로도토스가 기록한 헤라클레이온은 어떤 도시였을까
헤라클레이온은 기원전 331년 알렉산드리아가 세워지기 전까지, 그리스 세계에서 온 배가 이집트로 들어가려면 반드시 거쳐야 했던 공식 관문 항구였다. 발굴팀은 도시가 세워진 시기를 기원전 8세기 무렵으로 추정한다.
관문이라는 지위는 곧 세관을 뜻했다. 지중해를 건너온 배는 이곳에서 화물을 검사받고 세금을 치른 뒤에야 나일강 물길을 따라 내륙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항구의 창고와 정박지는 이집트로 들어가는 부의 길목이었던 셈이다.
기록 속 도시가 어디에 있었는지는 오랜 수수께끼였다. 나일강 하구의 지형이 홍수와 퇴적으로 계속 바뀐 탓에, 문헌 속 지명과 실제 위치를 잇는 일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스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기원전 5세기에 이 항구를 기록에 남겼다. 영웅 헤라클레스가 이집트에 처음 발을 디딘 자리에 큰 신전이 세워졌다는 이야기, 트로이 전쟁 전에 헬레네와 파리스가 이곳을 다녀갔다는 이야기가 그의 문장으로 전해진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아문-게레브 신전이 서 있었고, 신전 북쪽으로는 도시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큰 운하가 흘렀다. 운하와 이어진 대형 정박지가 여럿 있어 항구 전체가 국제 무역의 허브로 붐볐다.
아문-게레브 신전은 종교 행사의 출발점이기도 했다. 오시리스 신을 기리는 축제 때는 신상을 실은 의례용 배가 신전을 떠나 이웃 도시 카노푸스의 사당까지 물길을 따라 행진했다고 발굴팀은 설명한다.
항구를 오간 물품으로는 그리스 도자기와 포도주, 은 같은 지중해 물산이 꼽힌다. 반대 방향으로는 나일강 유역의 곡물이 실려 나가, 정박지는 두 세계의 물산이 교차하는 저울점 노릇을 했다.
흥미로운 점은 이름이다. 이집트인은 도시를 '토니스'라 불렀고, 그리스인은 헤라클레스의 이름을 딴 '헤라클레이온'으로 불렀다. 두 이름이 어떤 관계였는지는 발굴 이후에야 풀리게 된다.
닻 700여 개와 배 125척은 헤라클레이온의 무엇을 말해줄까
발굴 현장에서는 닻 700여 개와 기원전 6~2세기의 배 125척이 확인됐는데, 한 항구에서 이만한 규모가 나온 것은 이곳이 수백 년 동안 지중해 무역의 관문으로 붐볐다는 물적 증거다. 세부 수치는 IEASM의 발굴 기록 페이지에 정리돼 있다.
발견 자체가 긴 수색의 결과였다. 발굴 전까지 헤라클레이온의 흔적은 어디에서도 확인된 적이 없었고, IEASM은 아부키르만 해저를 구역별로 훑는 정밀 탐사 끝에 진흙 아래 묻힌 성벽과 신전 터를 찾아냈다.
가장 극적인 순간은 붉은 화강암으로 깎은 높이 5.4m의 하피 신상이 물 위로 올라온 날이었다. 하피는 나일강의 범람과 풍요를 상징하는 신인데, 발굴팀에 따르면 이만 한 크기의 신상이 이집트에서 발견된 것은 처음이었다.
신상은 아문-게레브 신전 앞에 서 있던 것으로 파악됐다. 범람의 신이 항구 초입에서 배를 맞이하도록 세워 둔 배치로, 나일강의 풍요가 곧 도시의 존재 이유였음을 보여 주는 자리 선정이다.
온전한 상태로 나온 사람 키만 한 비석에는 파라오 넥타네보 1세(재위 기원전 380~362)의 칙령이 새겨져 있었다. 발굴팀은 출토 유물을 근거로, 문헌에 따로 등장하던 토니스와 헤라클레이온이 한 도시의 두 이름이라고 결론지었다.
닻 700여 개라는 숫자는 입항 순서를 기다리며 정박한 배가 늘 줄지어 있었다는 뜻으로 읽힌다. 배들의 연대가 기원전 6~2세기에 걸쳐 있다는 점은 그 붐빔이 400년 가까이 이어진 일상이었음을 말해 준다.
배 125척이라는 값은 발굴팀의 현재 집계로, 조사 초기에 알려졌던 것보다 늘어난 숫자다. 새 구역을 조사할 때마다 확인된 배가 더해진 결과로 보인다.
숫자만 나란히 놓아도 발굴의 규모가 보인다. 아래 표는 IEASM이 공개한 기록에서 추린 값이다.
| 발견 시점 | 2000년, IEASM(프랑크 고디오) |
|---|---|
| 위치 | 현재 해안에서 6.5km, 수심 약 10m |
| 하피 신상 | 붉은 화강암, 높이 5.4m |
| 닻 | 700여 개 |
| 확인된 난파선 | 125척(기원전 6~2세기) |
| 최종 침몰 | 서기 8세기 |
서기 8세기, 헤라클레이온이 바다 밑으로 사라진 과정
발굴팀 기록에 따르면 헤라클레이온은 여러 차례 자연재해를 겪은 끝에 서기 8세기 지중해 아래로 완전히 가라앉았다. 단 한 번의 대재난이 아니라, 재해가 거듭 겹치며 서서히 무너졌다는 쪽에 무게가 실리는 것이다.
연구자들이 배경으로 꼽는 것은 나일강 삼각주의 무른 점토 지반이다. 지진이나 큰 홍수가 물을 머금은 지반을 뒤흔들면 땅이 순간적으로 지지력을 잃고 액체처럼 풀리는 액상화(지반이 물러져 가라앉는 현상)가 일어나, 돌로 쌓은 신전과 건물일수록 빠르게 주저앉았다는 설명이다.
연구자들은 침몰을 긴 과정으로 본다. 지반이 내려앉을 때마다 도시의 일부가 물에 잠겼고, 사람들이 떠난 자리는 퇴적물이 천천히 덮어 갔다. 유적이 오늘날 수심 약 10m 아래에 놓이게 된 배경이다.
바다는 도시를 삼키는 대신 밀봉했다. 산소가 통하지 않는 고운 진흙이 유물을 덮으면서, 나무 배와 밧줄, 심지어 식물 열매까지 흙 속에서 형태를 지킬 수 있었다.
발굴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2021년 조사에서는 기원전 4세기의 버들가지 바구니가 둠야자 열매와 포도씨를 담은 채 나왔고, 길이 25m의 갤리선도 확인됐다고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이 전했다. 고디오는 당시 "아무것도 흐트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수중 발굴에서는 인양이 늘 정답으로 통하지 않는다. 발굴팀은 상당수 유물을 기록만 남기고 제자리에 두는 방식을 병행하는데, 산소를 차단하는 진흙층이 어떤 수장고보다 나은 보존고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남은 이야기도 있다. 순회 전시를 떠났던 유물들이 돌아오면 알렉산드리아에 수중 유산을 위한 전시 공간을 마련하자는 구상이 오래 논의돼 왔다.
발굴팀은 지금까지 살펴본 구역보다 진흙 아래 남은 구역이 훨씬 넓다고 밝혀 왔다. 헤로도토스의 문장에서 잠수사의 손끝으로 돌아온 도시, 헤라클레이온의 이야기는 이제 막 첫 장을 넘긴 셈이다.
헤라클레이온을 두고 아직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Q. 발굴된 유물을 직접 볼 수 있을까?
A. 일부 유물은 해외 순회 전시로 공개된 적이 있다. 2016년 영국 브리티시뮤지엄에서 열린 특별전 '가라앉은 도시들'이 대표적이며, 이후에도 발굴품은 이집트 당국과 협의를 거쳐 여러 전시에서 소개돼 왔다.
Q. 비슷하게 가라앉은 도시가 또 있을까?
A. 같은 아부키르만에서는 오시리스 축제 행렬이 향하던 카노푸스 유적이 함께 발굴됐다. 이탈리아 나폴리만의 바이아처럼 지반 변동으로 물에 잠긴 고대 도시도 세계 곳곳에서 확인된다.
Q. 왜 2000년이 되어서야 발견됐을까?
A. 도시 전체가 바다 밑 진흙과 퇴적층 아래 묻혀 있어 수면 위에서는 흔적을 찾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발굴팀은 정밀 탐사 장비로 해저 지형을 훑은 끝에 위치를 특정했다.
Q. '이집트의 아틀란티스'라는 별명은 어디까지 사실일까?
A. 아틀란티스는 플라톤이 전한 이야기 속 섬이고, 헤라클레이온은 문헌 기록과 출토 유물이 서로를 확인해 준 실재 항구다. 별명은 매체가 붙인 수사일 뿐, 두 이야기 사이에 확인된 연관은 없다.
Q. 바구니 속 과일이 2,000년 넘게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A. 산소가 통하지 않는 고운 진흙이 유물을 밀봉해 부패를 늦춘 덕분이다. 2021년에 나온 버들가지 바구니도 둠야자 열매와 포도씨를 담은 채 진흙 속에 봉인돼 있었다.
Q. 하피는 어떤 신일까?
A. 하피는 나일강의 범람과 풍요, 비옥함을 상징하는 이집트 신이다. 해마다 강물이 불어나 농토를 살찌우는 일을 관장한다고 여겨졌고, 무역 관문이던 헤라클레이온에서는 신전 앞에 대형 신상으로 세워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