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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 펼치지 않고 통째로 읽혔다

· 역사·유적 · · 약 12분 · 조회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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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불에 타 새까맣게 굳은 고대 두루마리를, 펼치지 않고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낼 수 있을까?

A. 2026년 6월 25일 베수비오 챌린지 연구팀이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 PHerc. 1667을 한 번도 열지 않은 채 22단 분량까지 판독했다고 공개했다.

A. 다만 이 두루마리는 높이 8센티미터만 남은 조각이어서, 여기서 "끝까지"란 남아 있는 부분을 남김없이 읽었다는 뜻이다.

판독 결과와 촬영 조건은 베수비오 챌린지가 2026년 6월 25일 공개한 발표문, 그리고 이틀 뒤 arXiv에 올라온 연구팀 논문(arXiv:2606.29085)을 2026년 8월에 나란히 놓고 옮겼다. 두루마리의 저자와 제목은 논문이 미확정으로 남겨 둔 대목이라 여기서도 확정하지 않았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헤르쿨라네움을 덮은 지 1,947년 만에, 그 도시의 별장에서 나온 두루마리 하나가 마침내 끝까지 읽혔다. 두루마리는 지금도 말린 상태 그대로다. 판독은 X선과 컴퓨터가 대신했다.

1752년부터 1754년까지 헤르쿨라네움의 한 별장 지하를 파 들어가며 꺼낸 탄화 파피루스는 옥스퍼드 헤르쿨라네움 소사이어티 정리로 약 1,800점의 조각, 원래 두루마리로 환산하면 800권 남짓으로 추정된다.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통째로 살아남은 유일한 장서다. 문제는 이 장서가 새까맣게 굳어 있다는 점이었다. 억지로 펴면 그대로 부스러졌고, 그래서 수백 점이 아직 말린 채 남았다.

베수비오가 태운 두루마리를 어떻게 펴지 않고 읽었을까?

X선으로 두루마리 내부를 통째로 촬영한 뒤 말려 있는 파피루스 층을 컴퓨터로 한 장씩 떼어 펴고, 잉크가 남긴 미세한 질감 차이를 기계학습 모델이 찾아내는 방식이다. 연구팀 논문에 따르면 촬영은 그르노블의 유럽싱크로트론복사시설(ESRF) BM18 빔라인에서 위상대비 마이크로CT(X선 미세 단층촬영)로 이뤄졌고, 복셀(3차원 화소) 크기는 2.4마이크로미터, 평균 입사 에너지는 78킬로전자볼트였다. 발표문은 이 과정을 X선 재구성, 표면 펴기, 잉크 신호 검출이라는 세 단계로 정리했다.

가장 큰 걸림돌은 잉크였다.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에 쓰인 잉크는 탄소 기반이라, 마찬가지로 탄소가 되어 버린 파피루스와 X선이 보는 밀도가 거의 같다. 밀도로 갈리지 않으니 아무리 선명하게 찍어도 화면에는 빈 종이만 나타난다.

연구팀이 택한 우회로는 표면이었다. 잉크가 얹힌 자리에는 파피루스 표면에 아주 미세한 굴곡과 결의 차이가 남고, 그 패턴을 학습한 모델이 "여기에 글자가 있었다"고 표시한다.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흔적을 통계로 집어내는 셈이다. 이 작업은 EduceLab의 브렌트 실스가 이끌었고, 연구팀 상당수는 상금 대회 참가자로 출발해 합류한 사람들이다.

AI로 재현한 탄화된 헤르쿨라네움 파피루스 두루마리와 X선 단층촬영으로 떠오르는 글자 이미지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PHerc. 1667에서 실제로 읽어낸 분량은 얼마나 될까?

22단(칼럼) 또는 칼럼에 상당하는 분량이며, 넓이로는 보존된 필기면 약 860제곱센티미터에 해당한다. 베수비오 챌린지 발표문은 여기에 한정을 하나 달아 두었다. 판독된 것은 그 22단의 아랫부분이고, 파피루스학자들이 옮겨 적어 검토한 결과라는 것이다.

PHerc. 1667의 판독은 몇 해에 걸쳐 단계를 밟아 온 결과다. 봉인된 두루마리에서 글자를 끌어내는 시도는 다음과 같이 이어졌다.

2023년 10월루크 패리터가 두루마리 안쪽에서 온전한 단어 하나(ΠΟΡΦΥΡΑϹ, "자주색")를 처음 읽어냄
2024년 2월 5일PHerc. Paris. 4에서 약 15단·2,000자 이상 판독, 그랜드 프라이즈 70만 달러 수여
2025년 5월 5일PHerc. 172에서 말린 두루마리의 제목과 저자를 처음 확인
2026년 6월 25일PHerc. 1667을 처음부터 끝까지 판독한 결과 공개

2024년 그랜드 프라이즈가 걸린 두루마리 PHerc. Paris. 4는 파리 앵스티튀 드 프랑스가 소장하고 있는데, 유세프 나데르·루크 패리터·율리안 실링거 세 사람이 읽어낸 것은 두루마리 전체의 약 5%였다. 이듬해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의 PHerc. 172에서는 말린 상태로 제목이 나왔다. 필로데모스의 『악덕에 관하여』 제1권이라는 판독이었고, 베수비오 챌린지는 권수 쪽에 물음표를 붙여 발표했다.

2024년 판독의 바탕이 된 촬영은 잉글랜드 옥스퍼드 인근의 입자가속기 시설 다이아몬드 라이트 소스에서 이뤄졌고, 그때 같은 방식으로 찍은 두루마리는 넷이었다고 베수비오 챌린지는 밝혔다.

PHerc. 172의 제목을 찾아낸 사람은 마르첼 로트와 미하 노바크였고, 베수비오 챌린지 연구팀의 션 존슨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결과에 이르렀다. 두 갈래의 판독을 파피루스학 팀이 각각 검토한 뒤에야 발표가 나갔다.

에피쿠로스학파 장서에서 왜 스토아 철학자 이름이 나왔을까?

확정된 답은 아직 없다 — PHerc. 1667의 본문에 크리시포스의 조카이자 제자인 아리스토크레온이 등장하지만, 연구팀 논문은 이것이 스토아적 맥락을 가리킨다고 적으면서 저자 특정은 유보했다.

헤르쿨라네움 장서의 성격을 보면 이 이름이 왜 눈에 띄는지 짐작할 수 있다. 옥스퍼드 헤르쿨라네움 소사이어티는 이 장서가 에피쿠로스학파 그리스 철학 저작 위주이며 신원이 확인된 글 대부분이 기원전 1세기 인물 필로데모스의 것이라고 정리한다. 같은 자료는 그를 이 학파의 중요한 대표자로 소개하며, 별장 자체는 피소 가문 소유였을 것으로 본다.

에피쿠로스학파와 스토아학파는 고대 지중해에서 서로 경쟁하던 학파였다. 그러니 스토아 인물이 등장한다는 사실 하나로는 여러 갈래의 이야기가 동시에 성립한다. 필로데모스가 반박하려고 상대편을 끌어온 대목일 수도 있고, 애초에 다른 저자의 저작이 같은 서가에 함께 꽂혀 있었을 수도 있다.

베수비오 챌린지 연구팀은 판단을 열어 둔 상태로 결과를 공개했다. PHerc. 1667의 제목은 회수되지 않았다. 논문은 제목이 지금은 사라진 윗부분에 적혀 있었을 가능성을 적어 두었다. 저자를 못박을 근거가 아직 손에 없다는 뜻이다. 발표문은 이 글을 윤리를 다루는 철학 논고로 소개하면서 인간 본성과 도덕적 진보를 짚은 대목을 들었는데, 어떤 학파의 손에서 나온 논고인지는 그다음 문제로 남았다.

PHerc. 1667이 남긴 한계는 두루마리의 크기에 있다

PHerc. 1667은 높이 8센티미터만 남은 조각이며, 논문이 밝힌 온전한 두루마리의 통상 높이는 19~24센티미터다. 지름도 2센티미터여서 보통의 4~6센티미터에 못 미친다. 이번 성과에서 "완전"이란 남아 있는 부분을 남김없이 읽었다는 뜻이지, 고대의 책 한 권을 통째로 복원했다는 뜻이 아니다.

판독 범위와 원본 복원을 뭉뚱그리면 다음 두루마리에 걸 기대도 함께 어긋난다. 그래도 달라진 것은 분명하다. 이전까지 봉인된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에서 건진 것은 군데군데의 낱말과 일부 표면이었지만, 이번에는 판독 범위와 파피루스학 검토 기준을 미리 걸어 놓고 한 두루마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통과시켰다. 방법이 한 번 통했다는 사실이 다음 두루마리의 전제가 된다.

PHerc. 1667을 소장한 나폴리 국립도서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의 서고에는 아직 말린 채로 차례를 기다리는 두루마리가 수백 점 남아 있다. 1752년에 삽이 닿았던 장서가 이제야 목차를 열기 시작한 셈이다.

헤르쿨라네움 두루마리, 무엇을 더 알아야 할까?

Q. 판독에 쓴 데이터를 일반인도 볼 수 있나요?

A. 베수비오 챌린지는 단층촬영 원본 데이터와 재구성 결과, 옮겨 적은 본문을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라이선스로 공개하고 코드는 깃허브에 올려 두었다고 밝혔습니다. 연구자가 아니어도 내려받아 열어 볼 수 있습니다.

Q. 조심해서 손으로 펼치면 안 되나요?

A. 연구팀 논문은 물리적 개봉이 되돌릴 수 없는 손상을 부르기 때문에 많은 두루마리가 아직 열리지 않은 채 남아 있다고 적었습니다. 18세기 이후 펼치다 부스러진 사례가 쌓이면서 지금은 비침습 방식이 우선됩니다.

Q. 기계가 없는 글자를 지어낸 것은 아닐까요?

A. 모델이 표시한 잉크 신호는 사람의 검토를 거쳐야 판독이 됩니다. PHerc. 172 때는 페데리카 니콜라르디가 이끄는 파피루스학 팀이 검토를 맡았고, PHerc. 1667의 본문도 파피루스학자들이 옮겨 적고 검토한 결과로 공개됐습니다.

Q. 두루마리 실물은 어디에 있나요?

A. PHerc. 1667은 나폴리 국립도서관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3세", PHerc. Paris. 4는 파리 앵스티튀 드 프랑스, PHerc. 172는 옥스퍼드 보들리언 도서관이 소장하고 있습니다. 다만 일반 관람이나 열람 조건은 기관마다 달라 이 글에서는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Q. 새까맣게 탄 파피루스에 어떻게 글자가 남아 있나요?

A. 화산 분출물의 열이 파피루스를 탄화시켰기 때문입니다. 탄화된 상태로 화산재 아래 봉인된 덕에 형태는 2,000년 가까이 버텼지만, 잉크와 파피루스가 똑같이 탄소가 되면서 눈으로는 글자를 가려낼 수 없게 됐습니다.

Q. 남은 두루마리도 곧 다 읽히나요?

A. 시점을 못박기는 이릅니다. 이 방식은 대형 싱크로트론 시설의 촬영 시간과 두루마리마다 다른 보존 상태에 좌우되고, PHerc. 1667처럼 윗부분이 사라진 두루마리에서는 제목조차 회수되지 않았습니다.

헤르쿨라네움베수비오 챌린지파피루스고고학X선 단층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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