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지평선에 닿을 무렵, 덴마크 남유틀란트의 습지에서는 갈대밭 위 허공이 서서히 어두워진다. 낮 동안 들판에 흩어져 있던 찌르레기들이 한 덩어리로 모여들며 하늘에 검은 띠를 그리고, 그 띠가 접혔다 펴지고 늘어졌다 뭉치기를 반복하는 동안 낮게 걸린 해가 잠깐씩 가려진다. 덴마크 사람들은 이 장면을 검은 태양(sort sol)이라 부른다.
수만에서 수십만 마리가 초 단위로 방향을 바꾸는데도 공중에서 부딪히는 새가 보이지 않는다. 대형을 지시하는 우두머리가 있는 것도, 미리 짜 둔 동선이 있는 것도 아니다. 군무와 관련한 수치는 2008년 볼레리니 연구진의 PNAS 논문과 2017년 PLOS ONE 시민과학 조사 원문을 2026년 8월에 직접 읽어 옮겼다.
한 줄로 말하면 — 찌르레기 한 마리가 좇는 상대는 가장 가까운 이웃 예닐곱 마리다. 이 작은 숫자 하나가 수십만 마리짜리 검은 태양을 한 몸처럼 움직이게 한다.
검은 태양은 찌르레기가 갈대밭에 내려앉기 직전에 만들어진다
검은 태양은 찌르레기 떼가 밤을 보낼 갈대밭으로 내려앉기 직전, 해가 지는 앞뒤의 짧은 시간에 만들어진다. 하루 종일 들판에 흩어져 먹이를 찾던 새들이 잠자리 위 상공에서 합류하면서 무리가 급격히 불어나고, 착지 지점이 정해지는 순간 군무는 갑자기 끝난다.
남유틀란트 관광청 VisitSønderjylland는 이 새들이 축축한 초지에 많은 각다귀와 풍뎅이 애벌레를 먹으러 습지를 찾고 밤에는 갈대밭에서 잔다고 안내한다. 명소로 꼽히는 곳은 독일 국경에 맞닿은 퇸데르마르스켄 일대이고, 관람 적기는 3~4월과 7월 말부터 11월 초 사이로 소개된다. 시기가 봄과 늦여름 이후로 갈리는 것은 남유럽 월동지와 스칸디나비아 번식지를 오가는 이동 경로 위에 이 습지가 놓여 있어서다.
군무 자체는 생각보다 짧다. 굿이너프 연구진이 2017년 PLOS ONE에 낸 시민과학 조사에서 23개국 3,000여 건의 관찰 기록을 모아 보니 평균 지속 시간은 약 26분이었고, 무리 규모의 평균은 30,082마리, 기록된 최댓값은 750,000마리였다.
계절 이동기에는 습지 전체를 드나드는 개체가 수백만 마리로 헤아려지기도 하지만, 이는 한 번의 군무에서 세어진 수와 기준이 다른 값이다. 저녁 하늘에 뜨는 띠 하나의 크기와, 두어 달에 걸쳐 그 습지를 거쳐 가는 총량은 같은 단위로 비교되지 않는다.
찌르레기 한 마리가 좇는 이웃은 평균 예닐곱 마리다
찌르레기 한 마리가 좇는 이웃은 평균 여섯에서 일곱 마리이고, 무리의 나머지는 시야에 들어와도 계산에 넣지 않는다. 로마의 물리학자들이 궁전 옥상에 카메라를 세워 무리를 입체로 촬영한 뒤, 새 하나하나의 3차원 위치를 복원해 얻은 값이다.
각 개체는 고정된 거리 안의 모든 이웃이 아니라 평균적으로 여섯에서 일곱 마리라는 고정된 수의 이웃과 상호작용한다는 것이 논문의 결론이었다. 볼레리니 등이 2008년 PNAS 105권 1232~1237쪽에 실은 연구이며, 식별자는 10.1073/pnas.0711437105이다.
여기서 갈리는 것은 거리가 아니라 순위다. 무리가 촘촘해져 이웃이 코앞까지 다가오든, 느슨해져 서로 멀어지든, 한 마리가 따라가는 상대의 수는 예닐곱으로 유지된다. 연구진은 이를 미터 단위로 재는 관계가 아니라 '몇 번째로 가까운가'로 정해지는 위상적(topological, 거리보다 이웃 순서로 정의되는) 관계라고 불렀다.
밀도가 변해도 관계망의 모양이 무너지지 않는다는 점이 이 차이의 실질이다. 매가 파고들어 무리가 갈라져도 각자가 붙잡고 있던 연결은 그대로 남고, 흩어진 덩어리들이 다시 모일 때 대형을 처음부터 새로 짤 필요가 없다.
✨ 짚고 넘어갈 점 예닐곱이라는 값은 수천 마리 규모의 무리를 촬영해 얻은 평균이다. 덴마크 습지에 모이는 수십만 마리급 무리에서 같은 수가 측정된 것은 아니며, 논문도 그 범위까지 확인했다고 적지 않았다. 규칙이 커진 무리에서도 그대로인지는 아직 열려 있는 질문이다.
예닐곱 마리 규칙이 찌르레기 무리를 한 몸처럼 움직인다
예닐곱 마리만 보는 새들의 신호가 무리 끝까지 닿는 이유는, 상관이 미치는 범위가 무리의 크기에 비례해 함께 커지기 때문이다. 같은 연구팀이 2010년 PNAS에 낸 후속 논문(식별자 10.1073/pnas.1005766107)은 한 새의 속도 변화가 다른 새의 속도 변화와 얼마나 함께 움직이는지를 측정했다.
보통의 물리계에서는 신호가 일정 거리를 지나면 잦아든다. 찌르레기 무리에서는 그 감쇠가 사실상 나타나지 않아, 한쪽 끝의 새가 튼 방향이 반대편까지 흐려지지 않고 도착한다. 무리가 두 배로 커지면 정보가 닿는 범위도 두 배로 늘어난다는 뜻이다.
개체 하나의 시야는 몇 미터에 그치지만 무리는 그보다 훨씬 넓은 범위를 감지하는 셈이고, 결과적으로 수십만 개의 눈이 하나의 감각기관처럼 작동한다.
부딪히지 않는 비결이 남다른 반사신경에 있다고 흔히 설명되지만, 실제 열쇠는 각자가 처리해야 하는 정보량을 여섯이나 일곱으로 줄여 놓은 구조에 가깝다. 수만 마리를 일일이 살피는 새는 한 마리도 없고, 그래서 어떤 새도 계산에 밀리지 않는다.
새매와 송골매가 함께 관측된 군무는 29.6%였다
굿이너프 연구진의 시민과학 자료에서 맹금이 함께 기록된 군무는 전체의 29.6%였고, 가장 자주 등장한 종은 새매였으며 말똥가리·개구리매·송골매가 뒤를 이었다.
관찰자가 눈으로 확인해 적어 넣은 기록이라, 맹금이 있었는데 보지 못한 경우까지 걸러내지는 못한다는 한계는 남는다. 다만 맹금이 무리 가까이에서 실제로 사냥에 나섰을 때 군무의 규모와 지속 시간이 함께 커지는 경향은 자료에서 뚜렷했다.
같은 조사는 오래 거론돼 온 다른 가설도 함께 시험했다. 체온을 아끼려고 잠자리에 모여든다는 설명이라면 추운 날일수록 군무가 길어져야 하는데, 기온이 설명하는 몫(R²=0.144)은 낮 길이가 설명하는 몫(R²=0.384)보다 작았다.
저자들은 군무가 잠자리 온기를 높이려고 개체를 불러 모으는 행동이라기보다 포식자에 대응하는 적응으로 보는 편이 자료에 맞는다고 결론지었다.
✨ 남아 있는 빈칸 맹금이 기록된 29.6%를 뒤집으면, 나머지 70%에서는 관찰자가 포식자를 보지 못했다는 뜻이기도 하다. 포식자 회피는 군무의 크기와 길이를 키우는 요인으로 확인됐지만, 매가 보이지 않는 저녁에도 새들이 왜 같은 춤을 추는지까지 이 자료만으로 답이 되지는 않는다.
검은 태양을 보러 가기 전에 짚어 둘 것
Q. 검은 태양은 언제 가야 볼 수 있나요?
A. 덴마크 남유틀란트 관광청은 3~4월과 7월 말부터 11월 초까지를 관람 적기로 안내합니다. 군무는 해가 지는 앞뒤에 시작해 평균 26분 남짓 이어지므로, 일몰 시각보다 넉넉히 앞서 도착해 기다리는 편이 안전합니다. 그날 새들이 어느 갈대밭을 잠자리로 고르는지에 따라 장소가 달라져 현지 가이드 투어가 운영됩니다.
Q. 찌르레기 군무는 덴마크에서만 볼 수 있나요?
A. 아닙니다. 시민과학 조사에 기록이 들어온 나라만 23개국이며, 영국과 아일랜드의 습지·부두, 이탈리아 로마 도심의 가로수 위에서도 대규모 군무가 관찰됩니다. 위상적 상호작용을 밝힌 촬영 자체가 로마에서 이뤄졌습니다. 덴마크가 유명한 이유는 무리가 특히 크고, 지평선까지 트인 습지라 하늘이 가려지는 장면이 통째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Q. 그렇게 빽빽한데 왜 서로 부딪히지 않나요?
A. 각 개체가 무리 전체가 아니라 가장 가까운 예닐곱 마리와만 방향·속도를 맞추기 때문입니다. 처리할 정보가 고정돼 있어 무리가 커지거나 밀도가 변해도 개체의 부담은 늘지 않고, 이웃과의 상대 위치를 유지하는 것만으로 충돌이 피해집니다.
Q. 찌르레기는 사람에게 반가운 새인가요?
A. 지역에 따라 평가가 갈립니다. 유럽에서는 개체 수 감소가 보고돼 보호 대상으로 다뤄지는 한편, 큰 무리는 과수·곡물 피해와 잠자리 주변 배설물 문제를 일으켜 기피되기도 합니다. 19세기 후반 북아메리카에 들여온 유럽찌르레기는 대륙 전역으로 퍼져 대표적인 침입종으로 분류됩니다.
검은 태양이 남긴 질문
검은 태양의 규모는 설계도가 아니라 규칙 하나에서 나온다. 하늘을 지운 띠의 대형을 미리 그려 둔 개체는 없고, 있는 것은 옆의 몇 마리를 놓치지 않는다는 규칙뿐이다. 그 규칙이 수천 마리 무리에서 측정됐고, 덴마크 습지의 수십만 마리 무리에서도 같은 값으로 유지되는지는 아직 확인을 기다린다.
가을 저녁 퇸데르마르스켄의 갈대밭 위에서 해가 가려질 때, 관람객이 보는 것은 새들의 춤보다 규칙의 결과에 가깝다. 예닐곱이라는 작은 숫자가 어디까지 커질 수 있는지가, 이 오래된 장면에 아직 남아 있는 질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