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숨은 이야기

국경선이 카페 테이블 한가운데를 지나는 마을 바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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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재현한 바를러 마을 풍경 — 카페 테라스 바닥을 가로지르는 국경 표시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주민을 다 합쳐도 1만 명이 안 되는 마을 하나에, 국경이 만들어 낸 영토 조각이 서른 개나 박혀 있다. 네덜란드와 벨기에가 뒤엉킨 마을 바를러 이야기다.

국경이 강줄기나 산맥을 따라 그어진다는 통념과 달리, 바를러의 국경선은 골목과 정원, 거실과 카페 테라스 사이를 지나간다.

Q. 한 마을 안에 어떻게 두 나라 영토가 30조각으로 뒤엉켰을까?

A. 네덜란드 바를러나사우 안에 벨기에 땅 22조각이 들어 있고, 그 벨기에 조각 안에 다시 네덜란드 땅 8조각이 들어 있다.

1198년 영주들의 땅거래에서 시작된 경계가 1995년에야 최종 확정됐고, 지금도 두 지자체가 한 마을을 나눠 맡는다.

바를러헤르토흐와 바를러나사우, 한 마을에 포개진 두 지자체

바를러는 겉보기에 하나의 마을이지만, 행정상으로는 네덜란드 바를러나사우와 벨기에 바를러헤르토흐라는 두 지자체가 같은 땅 위에 포개져 있다. 바를러나사우 시청 공식 안내는 시 경계 안에 벨기에 영토 22조각이 들어 있다고 소개한다.

주민 수는 네덜란드 쪽이 6천여 명, 벨기에 쪽이 2천여 명 규모로 알려져 있다. 어느 나라 주민이 되는지는 집이 어느 필지 위에 서 있느냐가 정한다.

반대 방향의 조각도 있다. 벨기에 쪽 바를러헤르토흐 영토 안에는 네덜란드 바를러나사우의 조각 8개가 들어 있는데, 그 가운데 7개는 벨기에 조각 속에 다시 자리 잡은 네덜란드 조각, 이른바 '역엔클레이브'다.

마을 살림도 두 벌이다. 시청과 교회, 우체국 같은 시설이 나라별로 따로 있고, 같은 골목의 이웃이 서로 다른 나라의 선거에서 투표한다. 겉모습은 평범한 시골 마을이지만 행정 지도는 모자이크에 가깝다.

바를러나사우 시청 안내와 네덜란드 국경표석 연구 모임 흐렌스팔런의 정리를 2026년 9월에 나란히 놓고 살폈으며, 자료마다 집계가 조금씩 다른 값은 각 출처의 표기를 그대로 옮겨 적었다.

1198년 영주들의 땅거래는 어떻게 국경이 됐을까

발단은 1198년, 브레다 영주 호드프리트 판 스호턴이 자기 땅을 브라반트 백작 헨드릭 1세에게 넘기고 곧바로 봉토로 되돌려 받은 거래였다. 국경표석 연구 모임 흐렌스팔런의 기록에 정리된 내용이다.

백작은 사람이 살고 세금이 나오는 알짜 필지들만 자기 몫으로 남겼다. '공작(헤르토흐)의 바를러'라는 이름이 여기서 나왔고, 남은 땅은 브레다 영주 몫의 바를러가 됐다.

1404년에는 나사우 가문의 엥엘베르트 1세가 브레다를 손에 넣으면서, 브레다 몫의 바를러가 '바를러나사우'로 불리게 된다. 밭과 집이 필지 단위로 두 주인에게 갈라진 채 수백 년이 흘렀다.

필지는 상속과 매매를 거치며 더 잘게 쪼개졌다. 한 뙈기 밭의 소유가 갈릴 때마다 장부 위의 경계도 함께 갈라져, 수백 년 뒤 지도를 그리는 사람들이 마주할 퍼즐이 차곡차곡 쌓여 갔다.

1830년 벨기에가 네덜란드에서 독립하자 중세의 필지 경계는 그대로 국제 국경이 됐다. 영주들의 장부가 두 나라의 지도가 된 셈이다.

얽힌 경계는 뜻밖의 역사도 만들었다. 1차 세계대전 때 네덜란드는 중립국이었지만 바를러헤르토흐는 벨기에 땅이었기에, 독일이 점령하지 못한 이 조각 안에 벨기에 쪽 무선 통신 시설이 세워졌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현관문 위치는 어떻게 집의 소속을 정할까

국경선이 건물 한가운데를 지나는 집은 현관문이 열리는 쪽 나라에 속하는 것으로 정리한다. 바를러에서 오래 통용돼 온 원칙으로, 집집마다 문패 옆에 소속 나라의 국기를 붙여 두었다고 노르트브라반트 관광청은 소개한다.

상점들이 규칙을 영업에 활용한 시절도 있었다. 두 나라의 폐점 시각이 다르던 때, 문 닫을 시간이 되면 손님과 함께 계산대를 국경 건너편 매장으로 옮겼다는 이야기가 관광 안내에 단골로 등장한다.

🏠 번지수가 두 개인 집  국경선이 건물을 관통하는 탓에 네덜란드 번지수와 벨기에 번지수를 나란히 단 집도 있다. 우편물과 행정 서비스는 현관이 열리는 쪽 나라를 따라가는 것으로 안내된다.

규정 차이를 노려 현관을 옮겼다는 일화도 전해진다. 다만 문헌마다 주인공과 시기가 조금씩 달라, 오늘날에는 마을의 전설에 가까운 이야기로 소개된다.

마스트리흐트 조약과 5,732개 필지, 국경 확정의 기록

1843년 네덜란드와 벨기에는 마스트리흐트 조약으로 국경선을 문서화했지만, 바를러 구간에서는 선 하나를 긋는 대신 필지 5,732개 각각의 국적을 명시하는 방식을 택했다. 중세의 소유 관계가 그만큼 촘촘히 얽혀 있었기 때문이다.

확정은 20세기가 끝나갈 무렵에야 이뤄졌다. 1974년 두 나라가 투른하우트에서 협정을 맺었고, 1995년 마지막까지 소속이 정해지지 않았던 들판이 바를러헤르토흐의 22번째 조각이 되면서 지자체 경계가 그대로 국가 경계로 선언됐다.

경계를 아예 단순하게 정리하자는 논의도 여러 차례 있었지만, 필지마다 소유와 세금, 생활의 이해관계가 달라 번번이 무산됐다. 결국 두 나라는 퍼즐을 푸는 대신 퍼즐 그대로를 국경으로 인정하는 길을 택했다.

노르트브라반트 관광청은 세계의 엔클레이브 64곳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 마을 일대에 몰려 있다고 소개한다. 국경 애호가들 사이에서 바를러가 '성지'처럼 불리는 배경이다.

카페 테이블 위의 국경선, 바를러의 오늘

바를러의 국경선은 오늘도 길바닥 위에 그대로 드러나 있다. 보도에는 흰 십자 표시와 'B'·'NL' 글자가 박혀 있어, 관광객은 걸음마다 자신이 어느 나라에 서 있는지 확인하며 걷게 된다.

노르트브라반트 관광청은 국경선을 따라 걷는 산책 코스와 안내 지도를 소개하고 있다. 두 발을 벌려 한 발씩 다른 나라를 밟는 기념사진은 이 마을에서 가장 흔한 여행자의 풍경이다.

상점과 카페 안으로도 선이 이어진다. 테이블 하나가 두 나라에 걸치는 자리가 생기고, 문은 네덜란드 쪽에서 열었는데 안쪽 매대 일부는 벨기에 땅 위에 놓인 가게도 있다.

국경이 일상을 흔든 순간도 있었다. 2020년 코로나19 봉쇄 때는 두 나라의 방역 규정이 달라, 국경선이 지나는 상점이 한쪽 매장만 열어 두는 진풍경이 전해지기도 했다. 프랑스24는 2024년 기사에서 바를러를 '유럽의 축소판'이라고 소개했다.

일상 행정에는 협력의 틀이 자리 잡았다. 두 지자체는 공동 협의체를 꾸려 도로 보수 같은 마을 일을 조율하는 것으로 소개되며, 주민들은 관할 시청이 어디든 같은 골목의 이웃으로 산다.

유럽연합 단일시장과 솅겐 협정 덕에 지금은 여권 검사도 통행 차단도 없다. 세율과 영업 규정, 건축 허가 기준은 여전히 나라마다 달라, 두 시청은 같은 골목의 일을 각자 나눠 처리한다.

바를러 국경 마을 방문과 생활 문답

Q. 바를러에서 국경선을 직접 볼 수 있는 곳은 어디일까?

A. 마을 중심가 보도 곳곳에 흰 십자와 'B'·'NL' 글자로 국경선이 표시돼 있다. 상점가와 주택가에서도 선이 이어지고, 국경선이 관통하는 집 앞에서는 두 나라 번지수가 나란히 붙은 문패를 볼 수 있다.

Q. 바를러는 어디에 있고 어떻게 가는 곳일까?

A. 네덜란드 노르트브라반트주 남단, 벨기에 국경에 붙은 내륙 마을이다. 네덜란드 브레다나 벨기에 안트베르펜 방면에서 도로로 닿으며, 마을에 들어서면 이미 두 나라를 오가고 있는 셈이 된다.

Q. 세계에 바를러 같은 곳이 또 있을까?

A. 인도와 방글라데시 국경의 쿠치베하르 일대에 비슷한 영토 조각이 많았지만, 2015년 두 나라의 맞교환으로 대부분 정리됐다. 필지 단위로 얽힌 채 지금도 유지되는 곳으로는 바를러가 대표 사례로 꼽힌다.

Q. 두 지자체 이름의 '헤르토흐'와 '나사우'는 무슨 뜻일까?

A. 헤르토흐는 네덜란드어로 공작이라는 뜻으로 브라반트 공작 가문 몫의 땅을 가리켰다. 나사우는 1404년 브레다를 이어받은 나사우 가문에서 온 이름이다.

Q. 주민들은 생활이 불편하지 않을까?

A. 유럽연합 단일시장과 솅겐 협정 덕에 일상 통행은 자유롭다. 다만 세금·행정은 소속 나라를 따라 두 갈래로 처리되고, 시청과 학교 같은 시설이 두 벌씩 있는 구조는 지금도 남아 있다.

Q. 집 현관을 옮기면 지금도 소속이 바뀔까?

A. 경계 자체는 1995년 확정으로 필지 단위까지 고정돼 있다. 현관 규칙은 경계선 위에 걸친 건물이 어느 쪽 행정에 속하는지 정리하는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바를러의 국경은 중세 영주의 장부가 800년 넘게 살아남아 굳은 흔적이다. 세금 나올 밭을 놓치기 싫었던 12세기의 계산이, 21세기 카페 테라스의 테이블 배치를 정하고 있다.

두 나라 주민은 그 위에서 매일 국경을 넘나들며 산다. 지도가 복잡할수록 함께 사는 기술이 정교해진다는 것, 바를러가 여행자에게 건네는 조용한 교훈이다.

바를러엔클레이브국경 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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