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크라켄으로 불려 온 대왕오징어가 살아 있는 모습으로 처음 촬영된 것은 2004년 9월 30일, 오가사와라 근해 수심 900m에서였다.
2004년 9월의 밤, 오가사와라 제도 앞바다에서 수직으로 내려간 낚싯줄 끝에는 미끼와 카메라 한 대만 매달려 있었다. 수심 900m에서 셔터가 일정 간격으로 돌아가는 사이, 어둠 속에서 긴 촉완 하나가 미끼를 향해 뻗어 나왔다가 줄에 감겼다. 끌어 올린 줄에는 5.5m짜리 촉완 토막이 남아 있었고, 카메라 안에는 야생에서 살아 움직이는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의 첫 사진이 들어 있었다.
대왕오징어의 눈은 왜 지름 27cm까지 커졌나
향유고래를 멀리서 알아채기 위한 장치라는 것이 현재 가장 활발히 검토되는 설명이다. 단에리크 닐손 연구팀은 2012년 지름 약 27cm에 동공 9cm짜리 눈알을 대왕오징어에서 보고하며, 이 크기가 먹이나 짝을 찾는 용도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정리했다.
연구팀이 던진 질문은 눈이 크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었다. 몸이 커지면 눈도 함께 커지지만, 대왕오징어의 눈은 같은 덩치의 다른 동물에게서 기대되는 크기를 훌쩍 넘어선다. 그 초과분을 무엇이 값을 치르고 있느냐가 물음이었다.
이유는 눈이 커질 때 얻는 이득이 목표에 따라 다르게 늘기 때문이다. 작고 가까운 물체를 볼 때는 눈을 키워도 성능이 금세 한계에 부딪히지만, 크고 흐릿하게 번지는 광원을 아주 먼 거리에서 골라내는 일에서는 지름이 커질수록 계속 유리해진다. 눈알을 사과만 하게 키운 대가를 회수할 수 있는 표적이 따로 있다는 뜻이다.
닐손 연구팀이 지목한 표적이 향유고래다. 같은 연구는 수심 600m보다 깊은 곳에서 120m 넘게 떨어진 거리부터 고래를 감지할 수 있다는 계산을 제시했다. 향유고래의 음파 탐지 거리도 그와 비슷한 규모여서, 연구진은 고래의 사냥이 오징어의 눈과 몸을 함께 키운 압력이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 눈이 보는 것은 고래가 아니다 심해에서 커다란 동물이 헤엄치면 몸에 부딪힌 발광 플랑크톤이 잇따라 빛을 낸다. 대왕오징어의 눈이 멀리서 알아보는 것은 고래의 형체가 아니라, 고래가 지나가며 켜 놓은 그 희미한 불빛의 궤적이다.
카메라는 어떻게 2004년에야 대왕오징어를 잡았나
잠수정을 몰고 찾아다니는 대신, 미끼를 단 수직 연승(한 줄에 여러 낚시를 매다는 어구)에 원격 카메라를 붙여 심해에 그냥 걸어 두는 방식이 통했다. 국립과학박물관 동물연구부의 구보데라 쓰네미와 오가사와라 고래관찰협회의 모리 교이치는 2004년 9월 30일 오가사와라 근해에 이 장치를 내렸다.
지점을 고른 방식이 이 연구의 핵심이었다. 두 사람은 오징어를 직접 찾는 대신 오징어를 먹는 향유고래를 따라갔다. 논문은 해마다 9월에서 12월 사이 향유고래가 오가사와라 앞 깊은 바다에 모여 먹이를 먹는다고 적고, 고래 관찰로 쌓인 잠수 깊이·위치 자료를 이용해 장치를 내릴 지점과 수심을 정했다고 밝혔다.
장치는 단순했다. 부표 아래로 늘어뜨린 줄 끝에 디지털 카메라와 수심 기록계를 담은 내압 용기를 달고, 그 아래 3m 줄에 미끼를 매달았다. 미끼는 갓 잡은 살오징어였고, 냄새로 유인하기 위해 으깬 크릴을 함께 썼으며, 줄 끝에는 납으로 만든 오징어 모양 낚시를 물렸다.
기록된 조건은 구체적이다. 지점은 북위 26도 57.3분, 동경 142도 16.8분이고, 대왕오징어가 미끼를 덮친 깊이는 수심 900m, 그 아래 해저까지는 1,200m였다. 개체는 촉완이 줄에 걸린 채 4시간 13분을 버티다 촉완 일부를 끊고 빠져나갔다.
남은 촉완 토막은 5.5m였다. 논문은 이 표본을 근거로 지느러미 끝에서 일반 팔 끝까지가 약 4.7m, 긴 촉완까지 포함한 전체 길이가 8m를 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사진에는 촉완을 공처럼 말아 미끼를 감는 동작이 잡혔고, 연구진은 이 종이 알려진 것보다 능동적인 사냥꾼이라고 적었다.
| 시점 | 그때 확인된 것 | 근거 |
|---|---|---|
| 1857년 | 학명 Architeuthis dux 기재(기재자 스텐스트루프) | 빙켈만 외 2013 논문의 학명 표기 |
| 2004년 9월 30일 | 야생 서식지에서 살아 있는 개체의 첫 사진 | 구보데라·모리, 2005년 Proc. R. Soc. B |
| 2012년 | 눈알 지름 약 27cm·동공 9cm 보고와 향유고래 탐지 가설 | 닐손 외, Current Biology |
| 2013년 | 표본 43점 유전체 분석으로 전 지구 단일 종 가설 지지 | 빙켈만 외, Proc. R. Soc. B |
크라켄 전설과 대왕오징어는 어디까지 겹치나
겹치는 것은 몸집과 긴 촉완이고, 배를 끌어 내렸다는 대목을 뒷받침하는 관측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크라켄은 18세기 노르웨이 성직자 에리크 폰토피단이 북유럽 뱃사람들의 이야기를 모아 기술하면서 널리 퍼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 묘사에는 섬처럼 큰 등과 배를 감는 팔이 함께 들어 있었다.
학문의 이름표가 붙은 것은 그로부터 한 세기 뒤다. 덴마크 동물학자 스텐스트루프가 1857년 이 동물에 Architeuthis dux라는 학명을 붙였고, 이후 해변에 밀려온 사체와 향유고래 위장에서 나온 부리가 실체를 증명해 왔다. 다만 살아 있는 모습만은 2004년까지 아무도 보지 못했다.
남은 논쟁 하나는 종의 수였다. 대양마다 다른 종이 있으리라는 오랜 추정과 달리, 빙켈만 연구팀은 2013년 전 세계에서 모은 표본을 분석해 그럴 근거를 찾지 못했다고 보고했다.
🧬 표본 43점이 말한 것 빙켈만 연구팀이 서식 범위 전역에서 모은 표본 43점의 미토콘드리아 유전체를 비교했더니 계통 구조가 잡히지 않았고 염기 다양성도 극히 낮았다. 연구진은 이를 전 지구에 단 한 종만 있고, 어린 개체가 해류를 타고 널리 흩어지는 습성과 맞아떨어지는 결과로 해석했다.
대왕오징어에 대해 더 궁금한 것은 무엇일까?
Q. 살아 있는 대왕오징어를 수족관에서 볼 수 있나요?
A. 장기간 사육에 성공한 사례는 확인되지 않습니다. 서식 수심의 수온과 수압을 수조에서 재현하기 어렵고, 그물이나 낚싯줄에 걸려 올라온 개체는 대부분 짧은 시간 안에 죽어 자연사 박물관의 표본으로 남습니다.
Q. 대왕오징어와 남극의 대왕고래오징어는 같은 동물인가요?
A. 서로 다른 종입니다. 대왕오징어는 긴 촉완 덕분에 전체 길이가 길고, 남극 해역에 사는 대왕고래오징어는 몸통이 더 굵고 무거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다만 두 종의 최대 크기를 숫자로 견주기에는 온전히 계측된 개체가 너무 적습니다.
Q. 대왕오징어가 배를 공격한 기록이 남아 있나요?
A. 검증된 현대 기록은 미끼를 덮친 사례입니다. 구보데라와 모리가 촬영한 개체도 미끼를 향해 촉완을 뻗다 줄에 걸렸습니다. 배를 감아 끌어 내렸다는 이야기는 목격담과 옛 기록의 형태로만 전해집니다.
Q. 대왕오징어 실물을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A. 야생에서 마주칠 가능성은 사실상 없고, 액침 표본이나 냉동 표본을 전시하는 자연사 박물관이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2004년 촬영을 주도한 구보데라 쓰네미가 소속된 국립과학박물관처럼 표본을 보유한 기관들이 상설 또는 기획 전시로 공개해 왔습니다.
대왕오징어 연구가 아직 답하지 못한 것
수명과 산란 장소, 야생 개체 수는 여전히 빈칸으로 남아 있다. 사진과 유전체가 채워 넣은 것은 ‘있다’와 ‘한 종이다’까지이고, 이 동물이 심해에서 어떻게 짝을 찾고 얼마나 오래 사는지는 표본이 우연히 올라올 때마다 조금씩 보태지는 중이다.
2004년의 사진이 바꾼 것은 크기 정보가 아니라 동사였다. 그전까지 이 동물은 해변에 밀려오거나 그물에 걸려 ‘발견되는’ 표본이었고, 사진 이후로는 미끼를 향해 촉완을 뻗고 감고 끊는 ‘행동하는’ 동물이 됐다.
그래서 크라켄 이야기가 완전히 정리됐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전설이 부풀린 대목은 걷혔지만, 실제 동물 쪽에 남은 여백이 아직 그만큼 넓다.
확인 시점은 2026년 9월이다. 구보데라·모리 논문은 미국 국립보건원(NIH)이 운영하는 PMC 공개본 전문으로, 눈 크기와 탐지 거리 수치는 룬드대학교 연구 포털의 닐손 연구 초록으로 각각 대조했다. 최대 몸길이로 흔히 인용되는 값들은 계측 조건이 자료마다 달라 하나로 좁히지 않고 남겨 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