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여름 레바논 바알베크의 옛 채석장에서, 발굴팀은 수백 년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하자르 알히블라(임신한 여인의 돌)’라 부르던 거석의 북쪽 사면을 파 내려가고 있었다. 목표는 소박했다. 로마인이 이 크기의 돌을 어떻게 떼어내고 어떤 장비로 끌었는지, 바닥에 남은 흔적을 조금이라도 더 찾는 것이었다.
흙과 돌부스러기를 걷어내자 예상 밖의 것이 나왔다. 더 깊은 암층에서, 네 면이 이미 모두 다듬어진 또 하나의 덩어리가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크기를 재 보니 옆에 누운 하자르 알히블라보다 넓고 높았다.
채석장에 누워 있던 그 덩어리는 결국 무엇이었을까?
독일고고학연구소는 2014년 11월, 길이 19.60미터에 너비 6미터, 무게 약 1,650톤으로 추정되는 석회암 블록을 확인했다고 발표했다.
유피테르 신전 기단에 쓰려고 다듬다 만 돌이며, 신전까지 가지 못한 덕분에 로마의 운반 준비 단계가 통째로 남았다.
1650톤 블록은 바알베크 채석장에서 어떻게 드러났을까
바알베크의 1650톤 블록은 하자르 알히블라 북쪽에 새로 낸 발굴 구덩이를 더 깊이 파 내려가다 뜻하지 않게 드러났다. 원래 그 구덩이는 돌을 고정하거나 끌어내던 장치의 흔적을 찾으려고 연 자리였다. 독일고고학연구소 오리엔트부는 2014년 11월 21일 보도자료를 내고 이 블록을 “지금까지 알려진 고대의 가장 큰 석재”로 소개했다.
현장 지휘는 레바논대학의 지닌 압둘 마시 교수가 맡았고, 바알베크 프로젝트 전체는 같은 연구소의 마르가레테 판 에스가 이끌었다. 발굴은 코트부스-젠프텐베르크 공과대학, 레바논 문화재청과 함께 진행됐다. 독일고고학연구소가 배포한 2014년 11월 보도자료에는 블록의 치수가 “길이 19.60미터, 너비 6미터, 높이 최소 5.5미터”로 적혀 있다.
높이에 ‘최소’가 붙은 이유는 그때 바닥까지 다 드러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보도자료는 정확한 높이를 확정하려면 다음 발굴 시즌에 조사 구덩이를 넓혀야 한다고 밝혔고, 이듬해 정리된 연구소 보고서는 높이를 5.6미터로 적었다.
발굴이 짧고 집중적인 방식으로 진행된 데에는 사정이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부터 주변 정세가 나빠져 현지에 오래 머무는 조사가 불가능해졌고, 연구소는 일정을 유연하게 잡은 단기 조사로 계획을 다시 짰다. 결과 분석은 압둘 마시가 3개월 동안 초빙 연구원으로 머물며 건축사가 다니엘 로만, 고전고고학자 홀거 빈홀츠와 함께 맡았다.
2026년 9월에 대조할 수 있었던 1차 자료는 이 보도자료와, 판 에스가 e-Forschungsberichte 2015년 3호에 실은 발굴 보고 두 건이다. 블록을 실제로 옮기려 했다면 어떤 장비를 몇 대나 걸었을지는 두 자료 모두 수치로 확정하지 않았다.
로마 기술자들은 바알베크의 거석을 어떤 장비로 끌었을까
바알베크 채석장 바닥에는 운반용 윈치(밧줄을 감아 무거운 것을 끄는 권양기)가 돌면서 낸 원형 마모 자국이 남아 있다. 하자르 알히블라 동쪽 시굴 구덩이에서 거의 다 떼어낸 중간 크기 블록들이 나왔는데, 그중 한 덩어리 윗면에 그 자국이 찍혀 있었다. 장치 자체는 사라졌지만, 앞서 실려 나간 블록들을 끌던 기계가 여기 있었다는 물증이다.
규모를 가늠하려면 신전 쪽을 봐야 한다. 발굴 보고에 따르면 유피테르 신전의 기단은 높이 13.45미터로, 돌을 세 단 또는 네 단 쌓아 만들 계획이었다. 맨 아래 단은 높이 3.9미터에 평균 길이 9.5미터짜리 블록으로, 그 위 두 번째 단은 높이 4.35미터에 평균 길이 19.6미터짜리 블록으로 짜였다.
보고서는 이 두 번째 단의 블록 하나하나가 약 1,000톤이라고 적었다. 즉 채석장에서 신전까지 약 1킬로미터를 1,000톤급 돌덩이가 실제로 건너갔다는 뜻이다. 다만 그 두 번째 단은 신전 남서쪽 면에서만 완성됐고, 예정돼 있던 세 번째 단과 네 번째 단은 끝내 올라가지 않았다.
채석장에만 남는 것들 윈치가 돌면서 낸 원형 자국, 마무리 직전에 멈춘 중간 크기 블록, 운반용 여유 살(보스)을 붙인 채 굳은 표면. 로마 석공의 작업 순서는 바알베크 남동쪽 이 비탈에서 공정별로 읽힌다.
왜 하자르 알히블라와 1650톤 블록은 채석장을 떠나지 못했을까
하자르 알히블라는 돌 내부와 서쪽 표면에 걸친 카르스트(석회암이 물에 녹아 생긴 빈 구멍) 구간과 아주 긴 균열 때문에 채석장에 남았다. 2014년에 주변을 넓게 걷어내면서 확인된 사실이다. 보도자료의 표현으로는 한쪽 모서리의 석질이 떨어졌고, 자연 균열 탓에 운반 도중 깨질 가능성이 높았다.
하자르 알히블라의 치수 표기는 자료에 따라 다르게 적혀 있다. 보도자료는 이런 기단용 블록을 “길이 약 20미터, 단면 약 4×4미터”로 개략 소개했고, 발굴 보고는 이 돌을 19.6 × 4.2 × 4.8~5미터로 실측해 적었다. 무게는 보도자료 기준 1,000톤에 조금 못 미친다.
새로 나온 1650톤 블록의 쓰임새는 치수가 알려 준다. 길이는 두 번째 단 블록과 같은 19.6미터인데 너비와 높이가 더 크다. 보고서는 이 돌을 기단의 세 번째 단으로 준비된 것으로 보았고, 그렇다면 기단은 네 단이 아니라 세 단으로 마무리될 설계였다는 이야기가 된다. 좁은 면 하나가 이미 매끈하게 다듬어져 있고 긴 면을 다듬을 기준선까지 남아 있어, 이 크기 그대로 실어 낼 계획이었음이 확인됐다.
채석장에 누운 거석은 둘만이 아니다. 하자르 알히블라에서 서쪽으로 150미터 남짓 떨어진 자리에도 두 번째 단용으로 다듬다 만 블록이 하나 더 있다. 이 돌은 레바논 내전이 이어지던 1977년에야 발견됐다. 조사 여건이 가장 나빴던 시기에 채석장의 목록이 하나 늘어난 셈이다.
채석이 언제 이뤄졌는지는 흙 속의 그릇 조각이 말해 준다. 시굴 구덩이 깊은 층에서 나온 토기 조각은 양은 적어도 연대를 잡을 수 있는 것들이었고, 채석이 로마 제정 초기에 집중됐음을 가리켰다. 같은 채석장에 후기 고대와 중세의 이용 흔적도 남아 있지만, 그 흔적이 석재를 떼어낸 작업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표층은 사정이 다르다. 시굴 구덩이의 위쪽 흙은 현대에 파고 메운 자국으로 크게 흐트러져 있어서, 연대를 읽을 수 있는 자료는 대부분 아래층에서 나왔다. 로마의 채석 현장이 2,000년 가까이 사람의 손을 타 온 자리라는 사실이 발굴 단면에 그대로 기록돼 있다.
바알베크의 1650톤 돌은 아직 채석장에 누워 있다
Q. 하자르 알히블라와 1650톤 블록은 서로 어떤 관계인가요?
A. 두 돌은 같은 채석장에 몇 미터 간격으로 놓여 있습니다. 하자르 알히블라는 수백 년 전부터 알려져 있던 거석이고, 1650톤 블록은 그 북쪽 사면 더 깊은 암층에서 2014년에 드러났습니다. 길이는 19.6미터로 같지만 새 블록이 더 넓고 높습니다.
Q. 채석장은 신전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나요?
A. 발굴 보고는 이 채석장이 로마 신전 구역에서 약 1킬로미터 남동쪽에 있다고 적었습니다. 1,000톤급 블록이 이 거리를 실제로 이동했다는 뜻이므로, 거리 자체가 운반 기술을 가늠하는 기준이 됩니다.
Q. 블록 높이가 자료마다 5.5미터와 5.6미터로 다른 이유는 무엇인가요?
A. 2014년 발표 시점에는 돌 바닥까지 노출되지 않아 “최소 5.5미터”로만 적을 수 있었습니다. 보도자료도 정확한 높이는 조사 구덩이를 넓힌 뒤에야 확정된다고 밝혔고, 이듬해 보고서에 5.6미터가 실렸습니다.
Q. 돌을 옮긴 장비의 실물 흔적이 남아 있나요?
A. 장비 자체는 남아 있지 않지만 흔적은 있습니다. 하자르 알히블라 동쪽 시굴 구덩이에서 나온 블록 윗면에 운반용 윈치가 돌면서 남긴 원형 마모 자국이 확인됐습니다. 목재와 밧줄은 사라져도 돌에 새겨진 자국은 남습니다.
Q. 이 채석장은 언제까지 쓰였나요?
A. 깊은 층의 토기 조각은 채석 활동이 로마 제정 초기에 이뤄졌음을 가리킵니다. 후기 고대와 중세에도 이 자리가 쓰인 흔적이 나왔지만, 그때의 이용이 석재 채취였는지는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Q. 1650톤 블록은 인류가 다룬 가장 큰 돌인가요?
A. 독일고고학연구소는 이 돌을 “지금까지 알려진 고대의 가장 큰 석재”로 표현했습니다. 고대라는 시대 범위와 ‘지금까지 알려진’이라는 단서가 함께 붙은 표현이므로, 모든 시대를 통틀어 최대라는 뜻으로 옮기면 원문보다 넓은 주장이 됩니다.
바알베크 채석장이 신전만큼 중요한 자리인 까닭
바알베크를 찾는 사람들은 대개 기둥이 서 있는 신전 쪽을 먼저 본다. 로마의 작업 방식을 읽기에는 남동쪽 채석장 비탈도 그만큼 값지다. 그곳에는 중단된 계획과 포기한 돌이 공정 순서대로 놓여 있기 때문이다.
세 단으로 지으려던 기단은 두 단에서 멈췄고, 세 번째 단이 될 돌은 채석장 흙 속에서 2,000년 가까이 기다렸다. 균열 때문에 버려진 하자르 알히블라와, 이미 실려 나간 1,000톤급 블록과, 끝내 뜨지 못한 1,650톤 덩어리가 한 비탈에 모여 있다. 결국 바알베크에서 가장 큰 돌은 지금도 채석장 흙 위에 놓여 있고, 그 자리가 이 유적에서 가장 많은 공정을 보여 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