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숨은 이야기

얍섬의 돌 화폐 라이는 바다에 가라앉아도 재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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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로 재현한 얍섬 마을 길가에 세워진 거대한 돌 화폐 라이
이미지: AI 생성 이미지

얍의 돌 화폐 이야기는 대개 "바다에 빠진 돌도 돈으로 쳐 줬다"는 한 줄로 소비된다. 그 일화만 떼어 놓으면 순박한 신뢰의 미담처럼 읽히지만, 1910년에 얍에 두 달 가까이 머문 미국인 인류학자 윌리엄 헨리 퍼니스 3세의 기록을 처음부터 따라가면 훨씬 건조한 장부의 이야기가 나온다.

Q. 바다 밑에 가라앉은 돌이 어떻게 계속 재산일 수 있나?

A. 라이의 소유권은 돌이 놓인 자리가 아니라 마을 전체가 공유하는 기억을 따라 옮겨 다녔기 때문이다.

퍼니스는 1910년 기록에서, 거래가 끝나도 돌에 표시 하나 남기지 않고 이전 주인의 집 앞에 그대로 뒀다고 적었다.

라이는 팔라우에서 캐어 바다를 건너온 석회암 원반이다

라이(rai)는 얍섬에서 나지 않는 석회암을 남쪽 팔라우의 바위섬에서 캐어 카누와 뗏목으로 실어 온 원반형 화폐다. 퍼니스는 이 돌을 현지 발음대로 '페이(fei)'라고 적으며, 지름이 1피트에서 12피트(약 30센티미터~3.6미터)에 이르는 두꺼운 돌바퀴라고 기록했다.

가운데에는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지름은 대략 전체 지름의 6분의 1이다. 장대를 꿰어 여러 사람이 어깨로 메고 옮기기 위한 구조다. 값은 뼘(엄지와 검지를 벌린 길이)으로 재는 지름으로 매겼고, 밖에 두어 이끼가 끼고 회색으로 바래도 긁어내면 그만이라 값은 줄지 않았다.

퍼니스의 1910년 원문과 유네스코 세계유산센터의 잠정목록 신청서를 2026년 9월에 나란히 놓고 이 글의 수치를 정했다. 두 자료는 팔라우까지의 거리를 각각 "남쪽으로 400마일"과 "400킬로미터의 외양"으로 적는데, 어느 쪽도 상대 표기를 언급하지 않아 여기서는 한쪽을 고르지 않고 둘 다 밝혀 둔다.

바다에 가라앉은 라이는 어떻게 계속 재산으로 남았을까

소유권이 돌의 이동이 아니라 마을의 인정만으로 옮겨졌기 때문에, 돌이 어디에 있든 장부는 그대로 유지됐다. 퍼니스는 옮기기 힘든 큰 돌을 산 사람이 "소유를 인정받는 것만으로 만족했다"고 적었다.

그가 전한 사례는 이렇다. 이웃 마을의 한 가문은 누구나 그 부를 인정하는데, 정작 가족조차 그 재산을 눈으로 본 적이 없었다. 두세 세대 전 조상이 팔라우에서 캐어 뗏목으로 끌고 오다 폭풍을 만나 줄을 끊었고, 돌은 그대로 가라앉았다.

돌아온 일행 전원이 그 라이의 크기와 품질을, 그리고 주인의 잘못이 아니었음을 증언했다. 마을은 몇백 피트 물속에 있다는 사정이 시장 가치를 깎을 이유가 못 된다고 받아들였다. 퍼니스는 이를 워싱턴 금고에 쌓인 은화에 빗댔다. 아무도 보거나 만지지 않지만 거기 있다는 증서 하나로 거래되는 돈이라는 것이다.

1910년의 환율표  퍼니스는 현지인 파투마크에게서 시세를 받아 적었다. 흰빛과 모양이 좋은 세 뼘짜리 라이는 식량 50바구니, 또는 80~100파운드짜리 돼지 한 마리, 또는 코코넛 1,000개와 맞바꿀 수 있었다. 퍼니스 자신은 자루 짧은 손도끼 하나로 지름 50센티미터짜리 흰 라이를 얻었다. 다만 그는 파투마크가 셈에 밝은 사람이라 이 값이 다소 높게 매겨졌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1898년 독일 행정부는 라이에 검은 십자가를 칠했다

1898년 스페인에게서 캐롤라인 제도를 사들인 독일 정부는 도로 보수 명령을 따르지 않은 지구 추장들에게 벌금을 물리기로 하고, 가장 값나가는 라이에 검은 페인트로 십자가를 그렸다. 돌을 실제로 가져가지는 않았다.

선택지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추장들에게는 금도 은도 없었고, 라이로 벌금을 받아 내려면 섬 인구의 절반이 운반에 동원돼야 했으며, 받아 봐야 관공서 건물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퍼니스는 지름 6피트짜리 돌이 독일 본국에서 통용될 리도 없었다고 적는다.

효과는 즉각적이었다. 스스로 가난해졌다고 여긴 사람들이 섬 끝에서 끝까지 길을 고쳤고, 정부는 관리를 보내 십자가를 지웠다. 그것으로 벌금은 납부된 것이 됐다. 소유의 표시를 지우는 행위 하나가 화폐를 회수하고 다시 푸는 절차 전부를 대신했다.

데이비드 딘 오키프가 라이의 값을 흔들었다

라이의 값은 돌 자체보다 그것을 가져오는 데 든 수고에서 나왔고, 19세기 후반 얍에 살던 한 상인이 그 사실을 뜻하지 않게 실증했다. 그는 팔라우로 범선을 보내 현지 전문가들에게 돌을 캐고 다듬게 한 뒤, 배 한 가득 싣고 돌아와 말린 코코넛과 해삼을 사들였다.

퍼니스는 이 인물을 "진취적인 아일랜드계 미국인 코프라 상인"이라고만 적고 이름을 남기지 않았다. 유네스코 잠정목록 신청서는 같은 인물을 데이비드 딘 오키프(1827~1903)로 특정한다.

신청서에 따르면 오키프는 1872년부터 1901년 실종될 때까지 얍 토밀 항의 타라앙 섬에 가족과 여러 국적의 노동자들과 함께 살았다. 얍 사람들이 코프라와 해삼 채집 노동을 제공하면 그는 배편으로 그들을 팔라우까지 실어다 주었고, 그들은 거기서 돌을 캐 다시 얍으로 가져왔다.

라이를 비트코인의 조상이라고 불러도 될까

이 비유를 두고 학계의 답은 둘로 갈린다. 오리건대의 스콧 피츠패트릭과 스티븐 매키언은 2019년 «Economic Anthropology»에 실은 논문(DOI 10.1002/sea2.12154)에서, 사회 관계망을 통해 굳어진 라이의 '구두 장부'를 블록체인의 뛰어난 고대 아날로그로 제시했다.

반대편에는 서식스대의 조 월턴이 있다. 월턴은 2021년 케임브리지 오픈인게이지에 올린 논문에서 이 유비의 공통점들이 "부정확하거나, 정의가 불분명하거나, 사소하다"고 적었다.

월턴의 지적은 유비의 정밀도에만 머물지 않는다. 영어권 저술이 한 세기 넘게 교육과 논쟁의 편의를 위해 얍을 끌어다 썼고, 그 과정에서 식민 지배의 폭력과 권력관계가 지워졌다는 것이다. 앞의 검은 십자가 일화가 대개 재치 있는 행정 사례로만 인용되는 것도 같은 맥락에 놓인다.

망욜 스톤 머니 뱅크에는 지금도 라이가 서 있다

얍 가길 자치구 마키 마을의 망욜 스톤 머니 뱅크에는 지금도 라이가 줄지어 세워져 있다. 유네스코에 제출된 잠정목록 신청서는 이곳을 얍주에서 유일하게 십자 모양으로 교차하는 스톤 머니 뱅크로 소개한다.

남북으로 뻗은 블레이라크는 길이 약 51미터, 너비 약 3미터이고 크기와 모양이 제각각인 라이 50개가 놓여 있다. 동서로 뻗은 망욜은 길이 약 90미터, 너비 약 6미터에 21개가 있다. 블레이라크는 선사시대에 정령이 지정했다고 전해지는 원래의 일곱 뱅크 가운데 하나다.

이 두 곳은 팔라우 아이라이주의 채석장 두 곳, 그리고 오키프의 타라앙 섬과 묶여 2004년 12월 29일 잠정목록에 올랐다. 채석장 두 곳의 면적을 합하면 22,828제곱미터다. 잠정목록은 등재 후보를 적어 두는 명부이므로, 세계유산 정식 등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얍의 돌 화폐, 무엇이 더 궁금한가

Q. 라이는 지금도 화폐로 쓰이나요?

A. 일상 거래에는 쓰이지 않습니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법정 통화는 미국 달러이고, 라이는 토지·혼인·분쟁 조정처럼 관습적인 자리에서 주고받는 예물의 성격으로 남아 있습니다. 다만 돌 자체는 마을 앞과 뱅크에 그대로 서 있습니다.

Q. 얍섬은 어디에 있나요?

A. 서태평양 캐롤라인 제도 서쪽 끝에 있는 미크로네시아 연방의 한 주입니다. 주도는 콜로니아이며, 오키프가 살던 타라앙 섬은 콜로니아에서 북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토밀 항 안에 있습니다.

Q. 라이의 값은 크기만으로 정해졌나요?

A. 크기가 가장 큰 변수였지만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퍼니스는 석회암의 흰 빛깔과 모양, 그리고 그 돌을 캐어 실어 오는 데 든 수고가 함께 값을 이뤘다고 적었습니다. 밖에 두어 생긴 이끼와 변색은 값에 영향을 주지 않았습니다.

Q. 라이를 훔쳐 가는 사람은 없었나요?

A. 퍼니스는 도난이 거의 알려진 바 없다고 적었습니다. 돼지 한 마리 값에 해당하는 돌을 옮기는 데만 장정 네 명이 붙어야 했으니, 훔치는 일 자체가 수지가 맞지 않았습니다. 무게가 그대로 방범 장치였던 셈입니다.

Q. 라이를 직접 보려면 어디로 가야 하나요?

A. 유네스코 잠정목록에 오른 망욜 스톤 머니 뱅크가 대표적입니다. 얍 가길 자치구 마키 마을에 있고, 두 개의 뱅크가 십자로 교차하는 형태입니다. 다만 스톤 머니 뱅크는 마을 공동체의 의례 공간이므로 방문 전 현지 안내를 따르는 편이 좋습니다.

Q. 얍의 돌 화폐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나요?

A. 아직 아닙니다. 2004년 12월 잠정목록에 올랐을 뿐 정식 등재는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미크로네시아 연방에서 세계유산으로 등재된 곳은 2016년에 오른 난마돌 유적이 유일합니다.

얍의 돌 화폐가 지금 말해 주는 것

라이의 핵심은 돌이 아니라 기록이다. 누가 무엇을 가졌는지 마을 전체가 함께 기억했고, 그 기억이 끊기지 않는 한 돌은 바다 밑에 있어도 되고 남의 집 앞에 서 있어도 됐다. 독일 행정부가 다룬 것도 돌이 아니라 그 기억의 한 줄이었다.

그래서 이 소재는 회계의 사례로 읽을 때 더 또렷해진다. 다만 그 회계를 오늘날의 기술 용어로 옮겨 부르는 순간 무엇이 지워지는지에 대해서는, 앞서 본 것처럼 아직 정리되지 않은 논쟁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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